요즘 이 남자 모르면 대화에서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봉숭아 학당' 끝 무렵에 나와 인기스타를 향해 매주 독설을 퍼붓는 남자, 왕비호다. 왕비호는 왕(王) 비호감의 줄임말로 본명은윤형빈(28)이다.
다음은 왕비호의 멘트 일부다. "야! 동방신기! 니들 살아는 있냐? 통 보이지 않아? 나한테 욕먹을까 봐 안 나오는 거라며?" 서태지를 향해선 이렇게 외친다. "누구? 아, 그 데뷔 17년차! 이제 디너쇼 준비해야지." 짙은 눈 화장에 핫팬츠와 쫄티를 입은 그의 외침에 객석에선 폭소가 터진다.
"그 핫팬츠에 쫄티가 제게는 수퍼맨 옷 같아요. 옷 입고 아이라인 그리는 순간 '자, 이제 변신! 가자!' 하게 돼요. 평소엔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는 "너무 센 캐릭터라 반응을 걱정했는데 제 먹잇감이 된 스타들도 '재미있다'고 한다"고 했다. "대상은 일단 인기가 많고 화제가 되는 연예인을 골라요. 누굴 언급해야 사람들이 불안해할까, 생각하는 거죠. 자료도 많이 찾아야 돼요."
그는 명지대 세라믹공학과를 졸업하고, 2005년 KBS 특채 개그맨 20기로 데뷔했다. 만만치 않은 4년 경력이지만 '왕비호' 이전의 그는 뚜렷하게 기억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4분짜리 코너에서 제 대사는 두세 마디밖에 없었어요. 방송계 은어로 일본말인 니주와 오도시라는 게 있는데, 저는 전형적인 니주였어요. 니주는 바닥을 깔고 오도시를 빛나게 해줘요. 저는 진심으로 니주가 좋았고 개콘에서 꼭 필요한 니주가 돼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랬던 그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작년 4월 인터넷에서 제 이름을 검색했더니 연관 검색어로 '안 웃겨'가 나왔어요. '윤형빈 안 웃기는데 개콘에 왜 계속 끼워주나요'라는 글도 있었어요. 충격이었죠."
그는 "내 역할은 다른 캐릭터를 받쳐주는 역할인데 시청자들은 그걸 전혀 인정해주지 않는구나. 나도 웃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자고 결심했다"며 "왕비호 캐릭터는 그렇게 탄생했다"고 했다.
'왕비호'라는 이름은 개콘의 김석현 PD가 지어준 것. 원래는 싸구려라는 뜻의 '사굴효'라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두 가지를 인기 비결로 꼽았다.
"과거 없었던 개그잖아요. 지금까지는 스타를 살짝 건드려도 게시판에 항의 글이 빗발쳤어요. 제가 그걸 아예 대놓고 하자 사람들이 통쾌해하는 것 같아요. 독설인 것 같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얘기라는 측면도 있죠. 저는 원칙이 있어요. 들어서 상처 될 얘기는 하지 않고 인신공격도 안 합니다. 사람들이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웃을 선을 찾고 그 선을 넘지 않으려 해요."
그의 독설이 매주 화제를 모으면서 "내 욕 좀 해달라"고 찾아오는 스타도 많아졌다. "모 가수의 매니저가 찾아와서 '표절한 곡 있는데 그 얘기 해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었지만 차마 그건 못 하겠더라고요."
지금껏 그가 '밟은' 스타가 셀 수 없지만 반응은서태지가 제일 뜨거웠다고 했다. "워낙 대 스타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애가 대 스타한테 깐죽거리는 상황이 얼마나 웃겨요. 가족들 다 모인 자리에서 아기가 할아버지 보고 '어이, 김영복씨!' 하는 거죠."
무명시절 스타들의 명멸을 지켜보며 그는 "타고난 게 전부가 아니고 인기 있다고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천재는 열심히 하는 사람을 못 이기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못 이긴다고 하잖아요. 저는 즐기는 과정까지는 못 갔지만 즐기려 노력합니다."
그는 "녹화가 수요일에 끝나면 목요일 하루 쉬고 금요일부터 고민한다"며 "일요일에 밤새 정리해 월요일 새벽에 1차 대본 완성하고 수요일까지 계속 수정하고 다듬는다"고 했다. "제 자랑 같지만 매주 새로 짜듯 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충 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최근 동료 개그맨들과 밴드 '오버 액션'을 결성하고 싱글 앨범도 냈다. "개그와 예능프로그램 다 잘하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어요. MC도 하고 싶고. 제가 보기보다 욕심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