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정의롭지 못한 전쟁, 이렇게 불명예가 될 전쟁을 나는 아직껏 알지 못한다." 글래드스턴은 1840년 영국정부가 아편전쟁을 일으키려 하자 이같이 외쳤다. 그는 뒤에 수상 직을 4차례나 역임하여 처칠과 더불어 영국의 가장 위대한 수상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그러나 아편전쟁에 군비지출안은 의회 표결에서 271 대 262라는 근소한 차이로 가결되고 말았다.
왜 글래드스턴을 비롯한 많은 영국인들은 아편전쟁을 반대했을까? 아편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영국의 무역적자 때문이었다. 그 주범은 홍차였다. 영국인들은 17세기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해 18세기에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그러나 기후 때문에 차가 재배되지 않아 모두 청나라에서 수입해야만 했다.
차를 사기 위해 영국인들은 은을 중국정부에 지불했다. 그런데 청나라에서는 영국상품을 거의 사지 않았다.
"우리 청나라는 부족한 물자가 없어 무역을 할 필요가 없으나 너희 오랑캐들이 불쌍해 은혜를 베풀고 있다."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말은 당시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영국은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면직물을 비롯해 기계로 만든 상품을 온 세계로 수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영국산 면제품은 가격과 품질에서 경쟁력이 없었다. 쌓여 가는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은 방법을 모색했다. 그것은 곧 아편을 중국에 밀수출하는 것이었다.
마약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황폐화시키는 가장 큰 사회악이다. 영국의 아편 밀수출이 늘어나면서 아편은 중국 내에서 큰 사회문제가 됐다. 결국 청나라 정부는 영국산 마약을 불태우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영국 정부가 마약의 합법화를 요구하면서 일으킨 전쟁이 바로 아편전쟁이다.
아편을 판매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도 정부가 나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영국 정부는 아편의 합법화를 요구하면서 전쟁을 일으켰다. 그것도 대영제국 황금기에 말이다.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 정부는 불합리한 난징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조약에 따라 광저우 등 5개의 항구를 열고 홍콩을 영국에 150년 간 할양하게 됐다. 그 뒤 중국은 반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개인 간의 거래나 국가 간의 거래는 상호 이익을 원칙으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역의 조건이 평등해야 한다. 당시 중국 정부는 오직 광둥에서 '공행'이라는 특허상인만이 국제무역을 할 수 있게 했다. 영국은 이것이 불만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직 무역을 위한 국제협정 같은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이러한 무역관계는 청나라 정부의 선택이지 강요할 사항은 아니다. 핵심은 영국의 면제품이 경쟁력이 없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영국은 아편밀수라는 불법을 자행했다는 점에 있다. 아편전쟁은 힘에 의해 지배되는 국제관계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아편전쟁과 함께 또 하나의 부끄러운 전쟁은 바로 미국의 베트남전쟁이다.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2차대전이 끝나기 직전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일본이 패배해 독립의 기회를 맞았으나 프랑스가 다시 점령을 시도했다. 그 뒤 베트남 사람들은 프랑스에 대한 항쟁을 계속해 결국 1954년에 독립했다. 그러나 베트남에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 베트남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려 하자 미국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당시 사회주의의 확산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1949년 광대한 중국대륙이 공산화됐고,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이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사회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했다. 그런데 1956년 남베트남에 수립된 반공정부를 지원하면서 깊은 수렁에 빠지기 시작했다. 남베트남 정권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였다. 미국의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을 뿐이었다. 결국 미국은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비난을 받으며 1973년에 베트남에서 물러나야 했다. 미국이 물러난 뒤 베트남에는 1975년 베트남 국민의 뜻에 따라 사회주의 정권이 성립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베트남에도 뿌리내리기를 바랬다. 그래서 자신들의 뜻에 따르는 베트남 지도자를 지원하는 것도 모자라 직접 베트남 사람들을 상대로 전쟁을 했다. 그러나 외부의 지원만으로 정권이 유지된 예는 역사에 없었다. 일시적일 뿐이었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있다. 베트남은 그들이 원하는 정부를 세울 권리가 그들 자신에게 있었다. 아무도 이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외부 세력은 그들에 대해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지 주체가 될 수는 없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을 제거한 것 또한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후세인이 독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독재자를 제거하는 것도 그 나라 국민의 힘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 제3의 후세인이 출현할 뿐이다.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한국전쟁을 일으키면서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에서 해방시킨다고 내세웠다. 그러나 북한에 의한 남한의 해방은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무력에 의해 일시적으로 남한을 점령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남한 사람들이 스스로 원해서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폭력일 뿐이다.
베트남 전쟁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진실을 가르쳐 주었다. 스스로의 힘에 의한 해결만이 가치 있고 역사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