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소년과 도시 소녀의 슬프지만 티없이 풋풋한 사랑을 그린 황순원(1915~2000)의 단편 소설 〈소나기〉가 〈소녀(少女)〉라는 제목으로도 발표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소녀〉는 결말 부분이 〈소나기〉보다 네 문장 더 있었던 것도 함께 밝혀졌다.

김동환 한성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는 한국문학교육학회지인 《문학교육학》 26호에 게재한 〈초본과 문학교육〉이라는 논문에서 〈소나기〉가 발표되던 해(1953년) 문예지 《협동》 11월호에 〈소녀〉가 실렸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소설 〈소나기〉는 지금까지 1953년 5월 《신문학》에 실린 것이 초본이자 원본으로 알려져 있었다"며 "발표 시기는 늦지만 〈소녀〉가 오히려 초본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논문은 그 근거로 〈소녀〉의 결말에 네 문장이 더 있으나 〈소나기〉에는 없는 점과 〈소녀〉에는 맞춤법에 어긋나는 표기가 다수 있지만 〈소나기〉에선 바로잡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초본으로 보이는 〈소녀〉가 늦게 발표된 것에 대해 논문은 "작품을 발표한 당시는 전쟁 무렵이어서 〈소녀〉가 먼저 투고되고도 뒤늦게 발간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소나기〉는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죽거든 저 입었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 묻어 달라고…'로 끝난다. 그러나 〈소녀〉에는 '아마 어린 것이래두 집안 꼴이 안될 걸 알구 그랬든가 부지요?/ 끄응! 소년이 자리에서 저도 모를 신음 소리를 지르며 돌아 누웠다./ 재가 여적 안 자나?/ 아니, 벌써 아까 잠들었어요… 얘, 잠고대 말구 자라!'는 문장이 더 들어 있다.

황순원의 제자인 문학평론가 김종회 경희대 교수는 "생전의 황순원 선생으로부터 결말 부분을 수필가 원응서 선생의 권유로 뺐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를 토대로 볼 때 〈소녀〉가 〈소나기〉보다 앞선 판본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