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은 8일 "경찰관 기동부대 8개 중 5개를 추석 연휴가 끝나는 다음주부터 민생치안 업무에 투입키로 했다"며 "일각에서 '왜 장안동 성매매만 단속하느냐'며 불평을 하는데 실제로는 서울 시내 전체의 불법 영업을 모두 단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9월 8일 보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유흥가에 홍등(紅燈)이 꺼졌다. 큰길 따라 1㎞ 가깝게 늘어선 윤락업소가 늘어선 거리 건물 외벽에 커다랗게 붙은 '안마' 두 자는 빛을 잃었다. 그렇다면 서울의 대표적인 성매매 집결지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용산역 텍사스
용산역 골목입구에 경찰차… 업소들 “오늘 안해요” 불 꺼
서울 용산역 앞 집창촌은 불이 꺼져있었다. 대형 통유리 너머로 홍등이 반짝이던 거리는 어둡고 조용했다. 삐끼(호객꾼)가 술 취한 남성을 끄는 "연애하고 가라" 소리가 가득하던 골목이다. 골목 입구에는 경찰차가 서 있었다. 근무복 입은 경찰이 차 밖으로 나와 골목을 둘러보고 있었다. 경찰 탓인지 골목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차 몇 대만 골목을 느릿하게 지나쳐 사라졌다.
그렇지만 유리창 속 닫힌 문 안에는 빛이 있었다. 유리창 안 집기도 먼지 없이 말끔했다. 주변 포장마차 주인은 "며칠 전까지 괜찮았는데 어제(7일)부터 갑자기 이런다"고 했다. 불 꺼진 성 매매 업소의 2층 창에 모습을 나타낸 여성은 "오늘은 안 하니 내일 오세요"라고 했다.
윤락가 골목을 빠져 나오자 삐끼가 다가왔다. "아저씨, 연애하러 왔죠? 여긴 오늘 안 해요. 바로 옆에 이촌동이 있는데, 여기 가격에 맞춰줄게요." 경찰차로부터 5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다. 30분쯤 후, 그는 중형 승용차에 남성 한 명을 태워 어디론가 사라졌다.
◆영등포역 텍사스
영등포역 골목 건널 때마다 호객… 영역나눠 은밀히 성매매
자정 지난 영등포역 앞은 막차를 놓친 사람들로 가득했다. 번듯한 백화점이 된 역 뒤 어두운 골목 입구에 '역전 파출소'가 있다. 파출소 옆에는 '청소년 출입통제 0시~24시'라고 적힌 표지판이 매달려 있다. 그 안으로 들어서자 40~50대 여성 한둘이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30m 정도 걷자 40대 여성이 따라붙었다. "우리 집으로 와" "얼만데요" "싸게 해 줄게" "돌아보고 갈게요" 동네시장에서 할 법한 대화를 나눴다. 그녀를 지나치자 다른 여성이 따라붙었다. 골목을 건너갈 때마다 영역이 나눠져 있는 듯 그녀들은 얼마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영등포역 어두운 뒷골목에선 은밀하게 성매매가 이뤄지는 듯했다.
경찰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역전 파출소 앞 경찰차는 수시로 성매매 집결지 주변을 돌았다. 오토바이 순찰도 이어졌다. 삐끼들도 경찰을 의식하고 있었다. 50대 여인은 휴대폰을 쥐고 있는 기자를 보며 "아저씨 경찰이지"라고 했다. 경찰은 성 매수자로 위장해 단속을 하고 있는 듯, 골목 안에선 근무복 입은 경찰은 볼 수 없었다.
◆청량리 588
청량리역 장안동과 달리 불 ‘반짝’… 지나칠 때마다 ‘유혹의 손짓’
청량리역 옆 편의점 골목 안쪽. 속칭 '청량리 588'이다. 이곳은 장안동과 마찬가지로 동대문경찰서 관할지역이다. 하지만 경찰의 단속 폭격을 맞아 불이 꺼진 장안동과 달리 청량리 588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업소 유리창 안에는 의자가 2~3개 있었지만 성매매 여성이 1명 정도만 나와 있었다. 문을 연 업소가 절반쯤 돼 보였다. 일부 업소는 목재 합판으로 입구가 봉해져 있었다. 가게 앞을 지나칠 때마다 유리창 안 여성들은 "오빠 놀다가" "이리 들어와"를 외쳤다. 가게 앞에 차가 세워진 곳도 있었지만, 보닛이 식어있었다. 손님의 차는 아닌 듯했다.
오전 1시쯤 골목을 한 바퀴 돌자 삐끼가 다가왔다. 역 방향 출구에 가까운 가게 앞을 지나자 40대 여성이 "오늘 개시도 못했어. 싸게 해줄게. 얼굴이라도 보고 가"라며 막무가내로 잡아 끌었다. 가게 안에는 얇은 합판을 대 나눠놓은 쪽방 다섯 개가 있었다. 한 평(3.3㎡)도 안 돼 보이는 방엔 침대만 하나 있다. 손을 뿌리치고 나서자 뒤에서 욕설이 날아들었다.
◆하월곡동 집창촌
하월곡동의 속칭 '미아리 텍사스'는 입구부터 삭막했다. 성매매 업소가 가득한 골목은 2m가 넘는 높은 담장이 둘러싸여 있다. 입구 앞에는 경찰서에서 붙인 성매매 행위 금지 경고문이 커다랗게 서있다. 가로등이 비춰 환한 도로변과 달리 골목 안쪽은 어두웠다.
입구 앞에는 삐끼 대여섯 명이 몰려있었다. 기자가 골목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순식간에 삐끼들에게 둘러싸였다. 가격을 흥정하는 것 같았지만 혹시 경찰인지 살펴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달랐다. 여성의 모습을 노출시킨 다른 곳과 달리 업소가 모두 검은 비닐로 덮여있었다. 단속 탓인지 바깥쪽에서 자물쇠로 걸어잠근 건물도 눈에 띄었다. 30분 동안 골목으로 들어오는 남성은 단 3명밖에 보지 못했다. 한 때 윤락녀만 1000명이 넘었다는 이곳은 폐허가 된 듯했다.
새벽 1시 20분, 종암 경찰서로 여성 5명이 성매매 혐의로 붙잡혀 왔다. 경찰이 하월곡동에서 현장을 덮친 것이다. 경찰은 "안마시술소는 적발한 후 욕조를 떼어내면 되지만, 이쪽은 아무 것도 없어 계속 단속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이 이들을 조사하고 있던 새벽 2시, 하월곡동 입구에서 택시 한 대가 멈추더니 남성 2명이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