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시는 올해로 '3려(麗·여수시 여천시 여천군)통합' 10주년을 맞았다. 전남 22개 시·군 중 수위권(首位圈) 도시로 성장한 것은 바로 지역통합력과 경제력이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통합 전(前) 연고지의 '소지역주의'를 털어내는 것이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다.
◆논의 4년 만에 통합
통합 여수시는 원래 하나의 여수군(496㎢)이었다. 그러다 1949년 오동도 인근 여수읍이 여수시로 승격되고, 돌산읍 등 나머지 지역은 '여천군'으로 바뀌었다. 중화학공업 육성책으로 1969년 여천군에 호남정유(GS칼텍스)가 세워졌고, 산단 근로자를 위한 계획 도시 여천시가 1986년 탄생했다.
통합 논의는 1994년부터 시작됐다. 당초 한뿌리의 상태로 되돌려 지역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에서다. 당시 인구는 여수시(45㎢) 18만6000명, 여천시(107㎢) 7만4000명, 여천군(344㎢) 6만8000명. 하지만 여천군과 여천시가 흡수통합을 우려해 완강히 반대했다. 1994년 3~5월 두 차례 주민 투표에서 여수시 찬성률 97%에도 불구하고 여천시(31%)와 여천군(34%)의 찬성이 적어 통합이 좌절됐다. 결국 여수시가 '통합 청사는 현 여천시청으로 한다'는 등 대폭 양보하자 주민들이 찬성표를 던져 1998년 4월 통합했다.
3개 자치단체 공무원 1942명은 모두 고용이 승계됐으나, 3년 뒤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현재는 1691명으로 줄었다. 통합 직후 33만 명이던 인구는 현재 약간 줄어 29만5000명이다.
◆통합저력으로 박람회 유치
통합의 장점은 인구 증가와 행정구역 확대로 경쟁력이 올라가고, 정부 지원을 많이 받는다는 점이다. 재정 규모는 통합 시점보다 두 배 늘었다. 예산은 1998년 3928억원(재정자립도 38%)에서 올해 7942억원(〃 30.6%)으로 늘었다.
경제력도 커졌다. 통합 전 3개 지역의 44개 업체는 37억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지금은 여수산단 하나가 작년 173억 달러어치를 수출했고, 생산액은 44조원에 이른다. 여수산단은 작년 전남도 수출의 78%를 담당하며 전남 경제의 구심점이 됐다. 지방세 규모는 통합 직후 845억원에서 2006년 2082억원으로 늘어났다.
최근엔 통일교 그룹이 여수 화양면에 10년간 1조6000억원을 투자해 국제 해양관광레저단지를 조성키로 해 개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2012여수세계박람회'를 유치하는 등 통합의 긍정적 효과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내부 갈등 남아
하지만 통합 전 연고지를 바탕으로 한 '소지역주의'가 여전히 '정서 통합'을 가로막고 있다. 또 1청사가 옛 여천시로 이전하면서 은행과 관공서 등도 대거 '여천'으로 옮기는 쏠림 현상이 발생해 중앙동 등 구(舊) 도심권이 공동화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런 점을 이유로 구 여수권을 기반으로 둔 일부 시의원들은 통합청사를 구 여수권인 여서동으로 옮겨야 한다며 공세를 펴, '통합 청사' 논란이 10년째 진행 중이다. 여수시는 시청사가 학동청사(1청사·옛 여천시청), 여서청사(2청사·옛 여수시청), 돌산청사(3청사·옛 여천군청) 등 3개로 나뉘어 있다.
여수 YMCA 김대희 정책기획국장은 "일부 정치권과 자치단체의 이해득실에 따라 잡음이 남아 있지만 대체로 시민들은 통합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한다"며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광양만권(여수·광양·순천) 통합에도 시민 60% 이상이 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