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일본의 기린맥주가 새 생맥주인 '기린 프리미엄 무여과(無濾過) 드래프트'를 발매했다. 유통기간이 12개월에서 3개월로 줄고 냉장유통을 보장하는 최고급 생맥주라는 게 이 회사의 주장이다. 취급 업소도 '기린 드래프트 마스터즈 스쿨' 수료생이 있는 곳으로 한정해 300여 곳밖에 안 된다.

이 맥주의 취급이 어려운 이유는 안에 효모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만일 관리 소홀로 효모가 발효하면 맛이 확 달라진다. 그렇다면 기린 프리미엄 무여과 드래프트 이전에 나온 생맥주는 모두 효모가 살아있지 않은 '가짜 생맥주'였다는 뜻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맞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같은 브랜드의 병맥주, 캔맥주, 생맥주는 효모가 죽어 있는 같은 내용의 맥주였고, 마시고 보관하는 방법에 의한 차이만 있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정확한 시점은 알기 어렵지만 한참 전부터 이랬다. 1969년 삿포로 맥주는 세라믹 필터로 걸러 열 살균을 하지 않고도 효모를 걸러내고 다른 미생물을 제거하는 비열(非熱) 처리 공법을 개발했다. 이 비열 처리 공법에 의해 만들어진 맥주는 맛의 변화가 잘 생기지 않는다. 이후 수십 년이 지나며 다른 맥주 회사들도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보관이나 유통이 간편하고 맛의 차이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효모가 살아 있는 맥주는 비열 처리 공법을 쓰지 않는 소규모 맥줏집에서만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효모가 죽은 맥주로 생맥주로 인정받기까지는 싸움이 한참 진행됐다. 삿포로는 이 공법을 만들면서 '맛의 변화가 적은 비열 처리 공법도 생맥주'라고 주장했고, 당시까지만 해도 비열 처리 공법이 없었던 다른 맥주 회사들은 '효모가 살아있어야 생맥주'라고 싸움을 걸었다. 결과는 삿포로의 승리였다. 1979년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비열 처리 맥주를 생맥주로 인정했다.

일본 공정위가 비열 처리 맥주를 생맥주로 인정한 이유는 국제적인 기준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맥주'란 단어가 나온 원래 단어인 영어 '드래프트 비어'는 유럽에서는 효모가 죽었든 살았든지 상관없이 병이 아니라 통에 담겨 있는 맥주를 뜻한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