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인성 기자 in77@chosun.com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지난 6개월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가 있던 우리 사회의 '이념' 문제를 다시 불거지게 한 시기이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뉴라이트 진영인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가 출간돼 논쟁이 불붙었고, 5월부터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둘러싼 촛불 시위대의 물결이 거리를 휩쓸었으며, 8월에는 '건국(建國) 60년'을 둘러싼 논란이 좌우를 갈라놓았다. 이번 주 잇달아 출간되고 있는 계간지·반년간지 가을호는 이제 각자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지난 6개월을 정의하고 분석하며 목소리의 각(角)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약간씩 다른 주제들을 통해 '엇박자'를 내는 형국이다.

교과서―"역사관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뉴라이트를 대표하는 계간 《시대정신》 가을호(통권 40호)는 《대안교과서》에 대해 계간 《역사비평》이 지난 여름호에서 가했던 비평을 반박하는 교과서포럼측의 글을 실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대안교과서》 저자들과 비평자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역사관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밝힌 점이다.

교과서, 촛불, 건국

갑신정변과 개화파에 대해 적극적인 평가를 내린 것에 대해서 '보수 세력을 자처하는 자신들의 역사적 기원을 개화파에서 찾기 위한 노력'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교과서포럼은 "《대안교과서》가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인 자유민권 사상의 뿌리를 개항기의 개화파에서 찾고 있음은 지적된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특별히 부각시킨 것도 이 맥락에서라는 것이다. 집필자 중 한 명인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같은 잡지에 게재한 〈우리에게 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현행 교과서가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의 역사만 있었다는 '독립운동 일원사관(一元史觀)'에 빠져 있으며, 이는 역사의 구조를 볼 수 없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촛불―"좌파 내부의 패배주의가 사라졌다"

민족주의 좌파 성향의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통권 141호)는 아예 촛불시위를 '촛불항쟁(抗爭)'이라고 명명(命名)했다. 필진들이 쓰는 용어도 다소 강경해졌다. 머리말을 쓴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전민항쟁으로서의 '촛불항쟁 국면'이 끝나고 있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촛불항쟁이 이명박 정부 선진화 담론의 허구성과 보수의 무능력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우리 내부의 패배주의를 일소했다는 것만으로도 촛불항쟁의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미디어 전쟁은 구미디어와 신미디어 사이의 전쟁"이라고 해석한 계간 《문학과사회》 가을호(통권 83호)는 촛불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인 분석'을 시도한 듯 했으나 이기형 경희대 교수의 글에서 결론 맺듯이 "시민적인 상식과 주권의 정당성을 도무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권력 앞에서 시민들은 촛불을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건국―"대한민국은 민족적 요구에 의해 세워졌다"

우파 성향의 반년간지 《한국사 시민강좌》 제43집은 '대한민국을 세운 사람들'이라는 특집으로만 꾸몄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과 초대 부통령 이시영을 비롯, 김성수, 신익희, 조병옥, 장덕수, 장면, 이범석, 김병로, 유진오, 조봉암, 백두진, 정인보, 최현배, 이병도, 안재홍, 한경직 등 정치·법률과 교육·문화 분야의 거두 32명을 선정해 연구 논문을 실었다. 편집위원인 민현구 고려대 명예교수는 서문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이 어떤 특정 정파의 정치적 승리로 달성됐다기보다는, 식민지 체제에서 속히 벗어나 자유민주적 독립국가가 수립되기를 열망하는 광범위한 민족적 요구에 따른 결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