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운 많은 꿈이 있는/이 땅에 태어나서 행복한 내가 아니냐/큰 바다 있고 푸른 하늘 가진/이 땅 위에 사는 나는 행복한 사람 아니냐'(신문희의 '아름다운 나라' 중)
올림픽에서 국가대표선수들이 전해주는 감격의 순간처럼 가슴 속에 와 닿는 노래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주는 가사가 인상적인 신문희(38)씨의 '아름다운 나라'.
신씨는 2004년부터 크로스오버 가수로 활동하면서 인지도를 넓혀왔고, '아름다운 나라'가 KBS TV '1박2일'의 백두산 특집편에 쓰이면서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게 됐다.
사실 그녀는 국내에서보다 국제적으로 더 인정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오데사국립음대에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 교수로 부임했을 뿐 아니라 세계 3대 성악 콩쿠르로 꼽히는 빈센조 벨리니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심사위원을 지냈다.
지난 8월 12일 본사 스튜디오에서 신문희씨를 만났다. 사진 촬영을 위해 갈아입은 태극기 의상이 먼저 눈에 띄었다. “8월 14일 SBS TV 독도 특집 방송에 출연할 때 입을 의상이에요. 유명 디자이너 케이킴이 무료로 만들어줬죠.”
‘아름다운 나라’는 신씨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낸 크로스오버 음반 2집 ‘The Passion’의 타이틀 곡이다. 이를 발표하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주변의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비서, 통역관, 전용운전사 등까지 제공받으며 VIP 대접을 받는 그녀가 한국에서 대중과 호흡하기 위해 신인가수처럼 활동을 시작한 이유는 뭘까? 신씨는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 모두 어릴 적에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라고 배우잖아요. 그런데 외국에 나가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다고 말해줘야 그제서야 알아듣죠.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는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라고 불평을 하게 됐는데, 또 언제부턴가 ‘그래도 난 한국인이야’라는 마음이 다시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심어줄 수 있는 노래를 제가 불러야겠다고 결심했죠.”
신씨의 긍정적인 성격도 이번 노래를 부르는 데에 한 몫 했다고 한다. 어딜 가든 따라다니는 최초,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부담이 됐을 법도 하지만 그녀는 생각이 달랐다. “최초, 최연소가 최고라는 뜻은 결코 아니에요. 그 수식어들은 제가 열심히 살았기에 주는 상이라고만 생각해요. ‘나이가 어려서 안돼’ ‘동양인이라서 안돼’ ‘여자라서 안돼’ 등을 생각하다 보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저에게 주어진 것들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죠. 그렇게 준비된 자가 되면 언젠가 문득 다가오는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어요.”
그녀가 음악에 정식으로 입문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 선생님이 인간문화재 홍원기 선생에게 소개를 해줘 여창가곡을 사사하기 시작했다. 이후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를 보게 됐고 성악으로 길을 굳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국제정치학 교수인 친척집으로 갔고, 영국왕립음악학교의 줄리 케너드 교수에게 사사했다. 이어 이탈리아 중앙음악학교를 3년 만에 졸업했고, 2000년 오데사국립음악학교의 최연소 교수가 된 것이다. “동양인이라 더 어려보였나 봐요. 교수 임용이 됐는데도 오디션을 한 번 더 보자고 하더라고요. 50~60대 교수님들 앞에서 노래를 했고 결국엔 인정을 받았죠.”
작년에는 외국인 최초로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교육공로상까지 받았다. “학생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강의실에 거울을 설치해 학생들이 자신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가만히 있는 학생을 뒤에서 껴안고 노래를 하도록 해서 오페라의 느낌을 극대화시켰죠.”
그녀의 명성은 빈센조 벨리니 콩쿠르에도 이어졌다. “한국인을 비롯해 유럽에서 유학하는 동양인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콩쿠르에 참가하는 학생 수도 많아졌어요. 그래서 아시아인 심사위원도 필요하게 됐나 봐요.”
신씨는 오데사대학에서 북한 학생을 지도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항상 두 명의 감시원이 따라다니던 학생이었어요. 노래는 참 잘했는데 아무리 봐도 40대로 보이는데 프로필을 보니 19세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화장실에 가는데 몰래 수행원을 따돌리고 들어와서는 망명을 도와달라는 거예요. 그 학생은 일본도 마음대로 드나들었기 때문에 제가 돕지 않아도 충분히 망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왜 힘없는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는지 아직도 의문이에요. 또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 활동을 하면서는 유럽에서 북한 IOC위원을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저에 대한 신상정보를 잘 알고 있더라고요. 외국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교수로 열심히 활동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 성악가 조수미씨의 동생이 찾아와 앨범 출반 제의를 했고, 2004년 1집 앨범 ‘The Whispering of the moon’이 탄생한 것이다. “조수미씨의 크로스오버곡 ‘나 가거든’의 성공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함께 작업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크로스오버 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크로스오버를 한다고 하면서도 제가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노래 부를 장소를 물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 잘라냈거든요. 하지만 2집을 발표하면서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제는 어디서든 노래 부를 수 있어요.”
그녀가 ‘대중과 가까이’를 지향하게 된 것은 대중으로부터 발휘되는 문화의 힘을 보았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게 돈이나 권력은 없지만 문화인으로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얼마나 큰지는 알아요.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것보다는 의미 있는 소리를 내는 문화인으로 오래오래 남고 싶습니다.”
| 신문희 교수가 말하는 ‘크로스오버 음악’ |
크로스오버 음악이란 서로 다른 장르를 넘나들며 교차시키는 것입니다. 클래식과 팝을 완전히 뒤섞어서 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르를 결합하면서도 장점을 잘 살려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 노래를 팝페라라고도 하지만 저는 단호히 아니라고 합니다. 팝페라는 크로스오버의 한 갈래로, 팝의 창법으로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아리아를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이나 안드레아 보첼리가 팝페라 가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