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8 정상회담에서 건배주로 쓰인 일본 사케 '이소지만(磯自慢)'은 일본 전국 술도가 10여 곳의 경쟁 끝에 선정됐다. 매년 12월 1000병을 예약제로 판매하는 이 술 가격은 1만2000~1만5000엔이지만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된다. 이 사케의 원래 명칭은 이소지만 준마이 다이긴조(磯自慢 純米大吟釀). 준마이 다이긴조란 무엇일까?
◆술병으로 읽는 사케의 등급
사케(일본 청주)도 와인처럼 라벨을 살펴보면 술맛을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 최고급 와인에 '그랑 크뤼(Grand Cru)'라는 등급이 있듯 사케에는 '다이긴조(大吟釀)'등급이 있다. 다이긴조는 사케의 최고등급으로 술의 원료인 쌀을 50% 이상 깎아내 만든다. 술을 빚으려고 원료인 쌀 한 알의 절반을 깎아낸 것이다. 바로 아래 등급 '긴조(吟釀)'도 40퍼센트 이상 깎아낸 쌀로 만든다.
고급 사케의 등급은 쌀을 깎아낸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쌀을 많이 깎아낼수록 누룩의 개성을 잘 살릴 수 있다. 쌀을 절반 가까이 깎아 만든 다이긴조와 긴조에선 풋과일 냄새와 같은 향이 난다. '음양향(吟釀香)'이라고 부르는 특유의 향이다.
긴조의 아래는 '도쿠베츠 준마이(特別純米)'와 '준마이(純米)'가 있다. 준마이는 긴조보다 쌀을 덜 깎아낸 만큼 섬세함은 떨어진다. 하지만 맛 자체가 강하다. 입에 닿는 느낌에 힘이 있어 반주로 인기 있다. 도쿠베츠 준마이는 술도가에서 다이긴조 이상으로 공을 들여 만든 준마이에 붙이는 이름이다. 나가노(長野)의 다이시치(大七) 도쿠베츠 준마이가 유명하다.
다이긴조와 긴조 앞에 준마이가 붙은 것도 있다. 최고등급인 다이긴조나 긴조에도 주정(酒精·양조 알코올)을 섞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음양향을 살리고 맛을 조절하기 위해 소량의 양조 알코올을 더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줄어들었다.
◆맛의 비밀은 술병 뒤에
사케는 병의 뒤 라벨을 보면 처음 보는 술이라도 맛을 짐작할 수 있다. +혹은 -부호와 함께 적혀있는 숫자가 크면 입에 닿는 맛이 부드럽고 달다. 작으면 술의 맛이 담담하고 쓰다. 술의 비중을 보여주는 '일본주도'라는 단위다.
일본주도가 높은 술은 '아마구치(甘口)', 낮은 술은 '가라구치(辛口)'라고 구분한다. 산도(酸度)를 보면 술의 '드라이함'도 알 수 있다. 산도는 사케에 함유된 호박산과 사과산, 유산 등의 양을 나타내는 표시다. 산도가 높으면 술맛이 드라이하고 산도가 낮으면 달아진다.
다만 사케의 맛은 여러 요소가 어우러져 나온다. 일본주도와 산도만으로 맛을 단정지을 수는 없다. 숫자는 사케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정도로만 쓰는 것이 좋다.
술의 뒷면에는 쌀을 깎아낸 정도인 '정미보합률'과 쌀 품종도 적혀있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처럼 사케를 만드는 쌀도 다양하다. 대표적인 술쌀은 야마다니시키(山田錦)와 고햐쿠만고쿠(五百万石)다. 알이 굵고 잡미를 내는 단백질 성분이 적어 술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특별한 사케도 있다
청주(淸酒)가 아닌 사케도 있다. 고주(古酒)는 사케를 8년 이상 숙성시킨 술이다. 고주는 위스키를 만드는 것처럼 오크통에 담아 숙성시킨다. 서양의 숙성주처럼 깊은 맛과 빛 아래서 황금처럼 빛나는 색이 특징이다. 히로시마의 하나하토 키조슈(貴釀酒·술을 만들 때 물 대신 술을 써서 만드는 술) 고주는 일본보다 미국의 뉴욕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 일본에서 유명해졌다.
샴페인 같은 사케도 있다. 야마구치(山口)의 술도가 고쿄에서 만든 스파클링 사케 '네네'는 달콤한 핫포슈(發泡酒)도 있다. '아저씨들이 마시는 술'이라는 인상이 박힌 사케를 여성들에게 보급하기 위한 시도다.
다양한 사케 중에서 술도가의 얼굴이 되는 것은 보통 다이긴조다. 사치스러울 정도로 쌀을 깎아내고 까다롭게 빚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