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통합 이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경북대 상주캠퍼스(옛 상주대) 일부 학과 학생들이 경북대 본교 본관을 점거해 10여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학생들은 "지난 11월 경북대와 상주대가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약속했던 사항을 지키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학교 측은 "지금으로선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맞서고 있어 양측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4년 후엔 사라질 졸업장= 농성중인 학생들은 두 대학이 통합한 후 오는 2012년까지 폐과가 결정된 상주캠퍼스 비즈니스경제학과와 영어과 1~4학년 학생 400여명. 열흘 전부터 상주와 대구를 오가며 집단행동을 벌이고 있다. 박나영(여·23·영어학과3년)씨는 "과가 사라지는 것도 억울한데 졸업장도 학교와 학과가 제 각각인 엉터리 졸업장을 받게 됐다"며 "사리진 학과명이 적힌 졸업장으로는 취업 때도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불만은 대학 측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합과정에서 두 대학은 폐과 대상 학생들에게 "특례규정을 만들어 졸업할 때 경북대의 유사학과(경제통상학부, 영어영문학과)가 새겨진 졸업장을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경북대 유사학과들이 이들 학생들을 졸업생으로 인정하는 특례규정 만드는 일을 거부하고 있는 것. 때문에 이들은 대학은 '경북대'로, 학과는 곧 사라질 상주캠퍼스의 '학과명'이 적힌 졸업장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딱 4년 동안만 찍힐 졸업장을 받게 되는 것이다.
폐과될 두 학과는 내년부터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으며, 폐과 이후엔 '경제통상학부'와 '영어영문학과'로 운영된다.
◆끝도 보이지 않는 갈등= 약속이행을 두고 학생―대학간의 마찰이 서서히 학생―학생, 학생―학과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유사학과로 지목돼 특례규정을 마련해야 하는 경제통상학부·영어영문학과 등은 "상주대 학생들과 학력 차가 있어 본교 학생들의 수업권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취업시장에서도 과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농성중인 상주캠퍼스 학생들은 대학 홈페이지에 자신들을 비방하는 악성 게시물을 올린 본교 학생들을 경찰에 고소할 계획도 세웠다. "현재까지 80명이 수사의뢰에 동의하는 서명을 했으며 100명이 채워지는 대로 경찰에 제출한다"고 했다. 권태준(28·비즈니스경제학과3년)씨는 "모든 교직원과 교수들이 경북대 소속으로 신분이 바뀌었는데, 우리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남게 됐다"며 "학생들의 입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학교가 해도 너무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북대 김철수(58) 교무처장은 "이들 두 학과의 졸업장 문제는 시간을 갖고 해결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성급한 통합이 원인= 두 대학은 지난 2004년 말 '통합추진 공동연구단'을 구성, 통합을 추진했으나 이듬해 6월 상주대가 구성원간 갈등을 이유로 통합논의 중단을 선언해 무산됐었다. 이후 지난 2007년 9월 상주대의 제안으로 통합논의가 다시 시작됐고, 같은 달 28일 상주대―경북대 통합 MOU 체결과 함께 본격 진행됐다.
이후 두 대학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불과 3개월 만에 통합 준비를 끝내고, 옛 교육인적자원부(현 과학기술부)에 통합신청을 내 올 1월 승인을 받았다. 통상 대학 통·폐합을 위해 1년 여간의 준비과정을 거치는 다른 대학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경북대 측은 "교육부가 정한 기간을 넘어 뒤늦게 통합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통합과정에서 약속된 '특례규정'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통합 후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북대는 "통합추진은 각 학교 기획처가 맡고 후속조치는 교무처가 맡는 바람에 양 부처간 협의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건 사실"이라며 "세세한 사항까지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려면 통합작업이 지체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본교 경제통상학부 한 교수는 "총장이 몇 달 전에 결제했다는 '특례규정'에 대해 지난주에 처음 들었다"며 "실적에 눈이 먼 학교가 학과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런 사전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처음부터 통합에 반대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