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로 태어나 한번쯤 해볼만한 세가지 직업은 해군 제독, 오케스트라 지휘자, 그리고 프로야구 감독'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손끝
하나로 큰 조직을 움직인다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이 가운데 한가지인 프로야구 감독의 하루(7일)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LG 김재박 감독의 하루를 오전에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경기후 운동장을
떠나는 순간까지 추적해 봤다. 스타 감독이라는 무게만큼이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성적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은 김감독이다.








▶또 하나의 아침(AM 09:00)



오전 9시 잠에서 깬다. 전날 '서울 라이벌' 두산과의 경기서 대패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13년간 감독 생활을 하면서 철칙으로 지켜온
것이 '전날 경기는 잊자'였다. 하지만 올시즌만큼은 그게 참 힘들다. 지난해 LG 감독을 맡아 꼴찌팀을 5위까지 올려놓았다. 그런데 올해는
생각대로 돌아가 주질 않고 있다.



다소 무거운 표정으로 아침을 시작했지만 부인 정복희씨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으며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노력한다. 시집 보낸 큰 딸이 임신중이다.
부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딸의 건강을 아내에게 물어보고, 골프 선수인 아들의 요즘 스케줄을 확인한다. 홈 경기때 집에서 먹는 아침은
늘 싱싱한 야채와 과일이다. 김감독은 야간 경기를 끝내고 늦은 저녁식사를 하기 때문에 아침식사는 가볍게 시작한다.



요즘은 부인과 운동을 시작했다. 현역 시절 다쳤던 허리가 최근 디스크 증세로 악화됐다. 부인 역시 어깨와 등쪽이 좋지 않다. 그래서 매일
아침 송파구 가락동 집에서 30분 떨어져 있는 올림픽공원까지 산책을 거르지 않는다.



아침운동을 나가기 직전 철저하게 변장(?)부터 한다. 가벼운 옷차림에 선글라스와 모자는 필수 아이템. 선수 시절부터 워낙 스타이다 보니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편하게 운동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오전 10시에 출발해 올림픽 공원에 도착했다. 1시간 동안 공원 주변을 속보로 걷는다. 걷는
동안 머릿속엔 오로지 야구 생각 뿐이다. 수십년간 지켜본 부인 역시 김감독을 방해하지 않는다. 부인 정씨도 요즘은 성적이 좋지 않아 내색은
하지 않지만 무척 신경이 쓰인다.



2시간 정도 땀을 흘리고 집으로 돌아온 김감독은 샤워를 한다. 가끔 전날 과음을 하면 인근 사우나를 찾기도 하지만 평소엔 집에서 샤워를 한다.
점심 식사까지 마친 김감독은 집을 나선다. 이날은 토요일이라 오후 5시 경기였다.







▶힘차게 출근(PM 1:20)



아파트 주차장에서 김감독을 기다리는 애마는 최고급 세단 에쿠스다. LG와 계약 당시 구단에서 제공한 차량. 깔끔한 세미 캐주얼 감청색 자켓을
걸쳤다. 검정색 서류 가방과 잘 매치돼 세련미가 넘쳤다. 54세의 나이가 실감나지 않는다. 탄천길을 타고 야구장까지는 20분 정도 달려 도착한다.
창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늘 경기의 필승을 다짐해 본다.



잠실 야구장에 도착한 김감독은 감독실에 맨먼저 들러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다. 이어 책상 위에 놓인 2군 경기 보고서를 확인한다. 마침 정진호
수석코치가 노크를 하고 들어와 김감독에게 이날 2군서 박용택이 올라왔다고 보고한다. 손가락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갔던 박용택이 2주만에 복귀했다.
타선의 활력소가 될 것으로 확신하며 그라운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덕아웃으로 나가자 늘 그랬듯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이런저런 농담도
주고 받고, 전날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감독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바로 기자들과의 대화인만큼 성심성의껏 대답한다. 김감독은
기자들에게 비타음료를 하나씩 돌린 뒤 자신도 한병 마신다. 마침 병뚜껑에 '보너스 한병 더'가 나왔다. 그러자 아이처럼 좋아하며 기자들에게
"오늘 운 좀 따르겠는데"하고 자랑한다.



기자들과의 대화가 대충 끝나자 그라운드쪽으로 걸어나간다. 배팅 케이지 뒤에 착 붙어서서 타자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김용달 타격코치와 뭔가를
한참 이야기한다.훈련이 끝날 무렵엔 조상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건다. 경기전 저녁을 먹기 위해 중국음식을 주문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날 김감독의
메뉴는 간자장과 군만두. 김감독은 "그것 몰랐지? 두산이랑 경기할 때 우리가 원정이면 야구장 식당에서 못 먹는거. 그래서 이렇게 가끔 중국음식을
시켜먹고 그래"라고 한다. 기자도 이날 처음 안 사실이다. '잠실 원정팀' LG 선수들도 이날은 김밥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허탈, 하지만 내일은 미소(PM 10:20)



하루종일 김감독을 따라다닌 만큼 이날만은 꼭 이겼으면 했다. 2-2로 팽팽하던 8회 박경수가 솔로홈런을 치며 3-2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9회 동점을 허용하더니 결국 두산 김동주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졌다. 선발 투수 2명을 투입하는 강수를 띄우고도 결과는 패배. 1패를 떠나
팀이 받을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김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참동안 덕아웃 의자에 주저앉아 일어날줄을 몰랐다. 아무도 그 근처에 가지 못한다. 잠시후 김감독은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감독실로 이동했다.



경기 후 후속 취재가 남아 있었지만 도저히 감독실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렸다. 경기 종료후 40분쯤 됐을까. 조심스럽게
감독방을 노크했다. "네"하는 대답을 듣고 문을 밀고 들어갔더니 웬걸, 김감독은 그때까지도 유니폼 차림으로 의자에 기대 앉아 멍하니 감독실
천장만 올려다 보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 외엔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자 김감독은 "이거 참, 할말이 없네. 오늘 이겼으면 코치들이랑
생맥주라도 마시면서 좋은 그림 좀 잡아주려고 했는데"라며 아쉬워한다. 이 말을 하는 중에도 얼굴이 석고상처럼 굳어 있다. 선수들 마무리 훈련을
보기 위해 남아 있다고 말한 김감독은 경기후 1시간이 지난 시점에야 비로소 자리를 떠 샤워장으로 향했다. 샤워를 마친 뒤 출근 때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서류가방을 낀 채 라커룸 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어쩐지 작아 보였다..



'그라운드의 여우'라는 김재박 감독.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정한 승부사의 전형.



하지만 알고보니 그도 자그마한 일에 웃음 짓고, 패배에 한숨 짓는 우리 이웃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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