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한국 시각) 유로 2008 독일폴란드의 B조 예선이 열린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의 뵈르테르제 슈타디온. 관중석 한쪽을 채운 붉은 물결과 함께 폴란드 국가가 연주됐고, 이어 독일 국가가 울려 퍼졌다. 제2차 세계대전을 불러 온 독일의 폴란드 침공. 구원(舊怨)으로 얽힌 두 나라의 맞대결은 축구 경기 이상의 의미였다. 폴란드는 지난 75년 동안 축구장에서 단 한 번도 독일을 꺾어보지 못했다. 승리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폴란드 팬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어깨동무를 하고 힘차게 국가를 부르는 독일 선수들 틈에 끝까지 입을 떼지 않는 한 사내가 있었다. 루카스 포돌스키였다. 포돌스키는 1985년 폴란드 남서쪽의 글라이비츠에서 태어났다. 그가 두 살 때 포돌스키의 가족은 자유를 찾아 독일로 이주했고, 포돌스키는 축구 선수로 착실히 성장해 2004년 19살 때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흐르는 피는 분명히 폴란드의 것이었다. 그는 폴란드인 여자 친구를 사귀고, 여전히 집에서는 폴란드어를 사용한다.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폴란드와의 조별 예선에 출전했던 포돌스키는 "마음속으로 울면서 뛸 것"이라고 했고, 실제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2년 뒤 똑같은 상황을 맞았다. 그 새 의연해진 걸까. 포돌스키는 두 번이나 폴란드의 골망을 갈랐다.

기뻐하는 팀 동료들에 둘러싸였지만 루카스 포돌스키(20번)는 웃지 않았다. 9일 열린 유로 2008 B조 예선 폴란드전에서 첫 골을 터 뜨린 뒤의 모습. 로이터뉴시스

전반 19분 포돌스키의 첫 득점은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완벽한 패스를 받아 이뤄졌다. 클로제 역시 폴란드인을 어머니로 둔 선수. 그의 가족 역시 클로제가 세 살 때 폴란드를 탈출해 프랑스를 거쳐 독일에 정착했다. 클로제가 가장 먼저 달려와 포돌스키를 안아주자 그의 두 눈엔 눈물이 맺혔다. 겨우 눈물을 훔쳐낸 포돌스키의 얼굴엔 환희란 찾아볼 수 없었다.

후반 27분엔 통렬한 발리 슛으로 한 골을 또 뽑았다. 이번에도 포돌스키는 크게 웃지 않았다. 경기 후 대부분 선수들은 교환한 유니폼을 어깨에 걸치거나 손에 들었지만 포돌스키는 굳이 폴란드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나섰다. 그제야 옅은 미소가 그의 얼굴에 비쳤다.

독일의 2대0 승리. 독일은 이날 오스트리아를 1대0으로 꺾은 크로아티아를 골득실에서 제치고 B조 선두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