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제원진 기자] 여자들이 싫어하는 이야기가 바로 축구 이야기다. 그 다음이 군대 이야기. 제일 싫어하는 주제는 바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다.
그만큼 여자와 축구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 듯 보이지만 그런 축구와 사랑에 빠진 여자가 있다.
주중에는 한국시간에, 주말에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시간에 맞춰 생활을 하는 그녀. MBC espn의 안진희(33) 축구 전문 캐스터다.
점심을 같이 먹기 위해 만난 그녀의 입에서 처음 나온 이야기도 "세리에 A 마지막 라운드 경기를 봤냐"는 말이었다.
▲ 나만이 할 수 있는 스포츠 캐스터가 되어 보자!
2003년 MBC espn에 입사하기 전 그녀는 2000년부터 춘천 MBC에서 잘 나가는 아나운서였다. 지방 방송사였지만 안정적이었고 뉴스 데스크를 진행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해외출장을 떠난 2002년 그녀는 대 전환기를 맞는다. 자신이 맡았던 라디오 프로그램과 뉴스 프로그램이 자신이 자리를 비워도 너무나 잘 굴러갔던 것. 당연한 일이었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다른 누구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이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던 그녀는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했고 2003년 MBC espn 채용공고를 본 후 바로 지원, 당당히 입사했다. 당시 면접을 보던 임원진 앞에서 "축구 중계를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그녀가 2006년 10월 세리에 A 중계로 그 꿈을 이뤘다.
"누구든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일 말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전문 분야를 찾고 싶었어요. 그러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축구를 생각했고 지원했습니다"라고 당시 지원 동기를 설명했다.
▲ 떨렸던 첫 축구 중계
누구나 처음에는 서툴고 떨린다. 2007년 10월 7일 인터 밀란과 나폴리의 7라운드 경기서 떨린 마음을 다잡고 중계 마이크를 잡았던 안진희 캐스터는 첫 방송부터 큰 액땜을 치러야 했다.
2003년 입사 후 2004년 3월 5일 '유럽 축구 골스'서 처음으로 축구 하이라이트를 맡기 시작한 그녀는 2007년 10월 처음으로 축구중계를 시작하게 됐다. 누구보다 하고 싶었고 누구보다 욕심이 났던 자리였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중계가 시작되자 화면은 검은색으로 바뀌었고 위성화면이 들어오지 않으며 그녀를 당황케 했다. 위성이 잡히지 않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녀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준비해 놓은 선수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위성화면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첫 중계이다 보니 많은 준비를 해서 이야기 거리가 많았다"며 "그런데 그 다음날 중계에서도 위성이 끊겼다. 큰 액땜을 치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EPL과 세리에 A는 천지차이
세리에 A를 주로 맡고 있던 그녀는 어느 날 한국 선수들의 출전이 많아지면서 프리미어리그를 중계할 기회를 잡게 됐다. 지난 4월 6일 프리미어리그 33라운드 풀햄과 선덜랜드 경기를 중계할 기회가 왔다.
당시 중계했던 90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고 설명한 안 캐스터는 "이탈리아 축구는 중원 싸움도 많고 뭔가 중간에 끊기기도 하는데 EPL은 공수전환이 빨라서 정신이 없었다"며 첫 EPL 중계를 회상했다.
하지만 세리에 A를 중계하다보니 이탈리아 축구팬이 다 됐다. 그녀는 "챔피언스리그서 AS 로마만 8강에 진출해 아쉬웠다"며 박지성이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한 서운함보다 이탈리아 클럽이 챔피언스리그서 성적이 안 좋은 아쉬움이 더 커 보였다. AS 로마는 2007-200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1차전서 0-2, 2차전서 0-1로 패했다.
▲ 펠레스코어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가장 재미있다는 축구 경기는 바로 펠레스코어가 나오는 것. 여기에 서로 골을 주고 받으며 끝까지 누가 이길지 모르는 경기가 된다면 축구의 재미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그녀도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중계를 묻자 서슴없이 "2008년 1월 21일 파르마와 인터 밀란의 경기였다"며 "중계 끝나고 집에 가서도 잠이 안 왔다"고 말했다.
이어 "밀란 더비도 재미있었고 리그 마지막 경기인 AS 로마의 경기도 잊을 수 없다. 너무 많다"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역시 펠레스코어가 난 파르마와 인터 밀란전에 대한 설명으로 다시 돌아왔다. "인터 밀란이 앞서다 파르마가 2-1로 역전했다. 그런데 다시 이브라히모비치가 거짓말같이 후반 43분 동점골을 넣었고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 후반 48분 역전골을 넣으며 경기가 끝났다. 너무 재미있어서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며 축구의 재미를 설명했다.
▲ 여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세리에 A
새벽 4시 30분 중계는 남자 스포츠캐스터도 가장 꺼려한다는 시간대다. 목소리가 탁 트여야 할 캐스터들로서는 일찍 잠을 자둬야 할 만큼 애매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시간에 깨어 축구중계를 하고 있는 안진희 캐스터는 그간에 알게 됐던 이탈리아 축구에 대한 매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특히 여자 축구팬들에게 말이다.
"EPL이 인기가 제일 많지만 실제로 전술적으로 변화가 많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는 이탈리아 축구다"고 설명한 안진희 캐스터는 "이탈리아의 경우 축구 보는 재미는 물론 선수들과 심판까지 잘 생겨서 보는 즐거움도 있다. 그들의 외모와 패션에 주목하다 보면 저절로 전술도 보이고 축구의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탈리아가 패션의 나라이다 보니 다른 리그와 달리 감독과 선수들의 외모와 패션이 다르다"고 밝힌 안 캐스터는 "선수들의 머리가 긴 사람이 많으며 여기에 머리띠를 해 좀 더 멋있게 자신을 꾸민다. 머리카락이 내려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머리띠를 썼겠지만 멋스러워 보인다. 심판까지 잘생긴 세리에 A는 여자 축구팬들이 좋아할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추천했다.
▲ 여자 축구캐스터로서 목표와 바람
여성 스포츠캐스터로서 남자들도 꺼려한다는 새벽 4시 30분 중계를 지난해 10월부터 5월초까지 7개월 간 소화해낸 그녀는 이제 새로운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파투를 가장 좋아한다. 카카와 가투소도 다음으로 좋아한다"며 축구와 연애를 하고 있는 안 캐스터는 "스포츠중계는 외국어를 공부하는 느낌이다. 끊임없이 알아야 할 것들이 나온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계속 찾아봐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매일 매일이 새롭다"며 자극을 주는 축구와의 연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야구 캐스터로서 유명한 한명재 캐스터가 있다. 앞으로 '여자 한명재'가 되고 싶다"고 목표를 밝힌 그녀는 "이미 유명한 캐스터가 됐지만 매일매일 꼼꼼이 준비하고 쉴 때도 항상 야구를 보고 계신다. 나도 저런 스포츠캐스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완벽히 쫓아갈 수 없다면 짝퉁이라도 되고 싶다"며 앞으로 더 배울 것이 많음을 드러냈다.
26개월 된 아들의 엄마로서 파일럿인 남편의 아내로서 안정을 찾아야 하지만 매일 도전에 직면한다는 그녀는 "보통 회사에 입사하고 5년이 지나면 일에 적응도 하고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매일이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며 스포츠캐스터가 얼마나 힘들 일인지 설명했다.
그래도 자신의 선택한 스포츠캐스터의 길이 행복하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힌 안진희 캐스터는 "스포츠는 중독이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그 나라 축구중계를 보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며 축구와의 연애를 계속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 마지막 부탁도 잊지 않았다. "남자캐스터의 경우 선수 이름을 잘못 말할 경우 실수했다고 생각하지만 여자캐스터의 경우 선수 이름을 잘못 말할 경우에는 정말 잘 몰라서 그런 줄 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자캐스터도 실수를 한 것인데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며 남자캐스터와 달리 여자캐스터에 대한 팬들의 엄격한 잣대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포츠를 사랑해 스포츠캐스터의 자리까지 왔다는 그녀. 모든 사람이 스포츠 특히 축구의 매력에 빠질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마이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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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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