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때, 비록 의식은 없으셨지만 손은 참 따뜻했습니다. 이렇게 손이 더운데 쉽게 돌아가실 리 없다고 믿었습니다. 선생님을 뵐 때마다 무엇인가 얻어갔던 제가 엄혹의 순간에 마지막 체온까지 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참담한 마음이 듭니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 문학인장 영결식'이 열린 8일 오전 8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장례위원장인 소설가 박완서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조사를 읽자 일부는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선생님이 계시던 원주 단구동 옛 자택은 제가 견디기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찾아갔던 마음의 친정집이었고 선생님은 제 친정 엄마였습니다."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노(老) 작가가 손수 만든 반찬을 먹으며 글을 썼던 작가들도 구름처럼 모여들어 어버이날(5월8일) 떠나가는 '문학의 어머니'에게 눈물의 이별을 고했다. 생전의 고인을 "하숙집 아줌마"라고 친근하게 불렀던 소설가 박범신씨는 "그 밥 힘이 정말 무섭네"라며 눈을 감았다. 문학평론가 정현기 전 연세대 교수는 "선생께서 평소 '새끼에게 모이 먹일 일이 있다는 것은 다 고마운 일이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회고했다. 고인의 딸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은 "어머니께서 아름답게 사시다가 아름다운 죽음을 맞으셨다. 너무도 많은 분이 마지막 길을 지켜봐 주셔서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도종환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장례식에는 유족을 비롯해 소설가 최일남 조정래 은희경 차현숙씨와 시인 조오현 오탁번 이문재씨, 문학평론가 김병익 김치수 김화영씨 등 문인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출판인 김언호 김경희씨 등 15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이어 고인의 유해는 원주시 단구동 토지문학공원에 있는 선생의 옛 집 앞뜰에서 추모식을 가진 뒤 매지리 토지문화관으로 옮겨져 창작실 앞뜰에서 진행된 노제를 지켜봤다. 유족들은 노제를 마친 뒤 영정을 모시고 선생이 직접 가꾼 텃밭과 집, 토지문화관 사무실 등을 돌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날 오후 늦게 모교인 경남 진주여고에 들른 고인의 유해는 9일 오전 10시 통영시 중앙동 문화마당에서 추모제를 갖고 산양읍 신전리 미륵산 기슭에 마련된 묘지에 안장된다.
안장식은 9일 오후 2시 남해안별신굿 보존회의 들채굿과 하관, 유가족 및 장의위원의 허토(봉분에 앞서 관위에 흙 한줌을 뿌리는 일) 등으로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