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는 경영학 석사학위를 의미하는 용어지만, 요즘엔 경영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춘 전문 직장인을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란 뜻이 강하다. 하지만 직장인 못지않게 CEO와 회사 중견간부에게도 MBA 과정은 절실하고 긴요하다. '속도전쟁'을 치르는 경영 일선에서 다시 경영학을 배우는 이들의 땀은 진지하고 역동적이다.
지난해 KDI 국제정책대학원 MBA 과정을 마친 두산캐피탈㈜ 김왕경(59) 사장은 국제금융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금융통'으로 불린다. 산업은행에서 32년간 재직하며 국제금융부문을 총괄했다. 당연히 해외근무가 많았지만 MBA 과정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없었다고 한다. 런던시티대학교의 그레시엄 칼리지에서 MBA단기과정을 들은 것이 재교육의 전부였다.
그러던 차에 2006년 2월 KDI MBA과정에 입학했다. 시간을 쪼개기가 어려웠지만 더 늦기 전에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김 사장은 "만학도지만 MBA과정에 입학해 주말과 휴일을 반납하며 30~40대 '쟁쟁한' 동기들과 씨름한 경험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또 두산캐피탈이 기계 할부 금융업체인 연합캐피탈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생긴 조직통합 후유증을 극복하는 데 MBA에서 배웠던 일련의 '전략적 경영통합' 수업이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수십 년간 현장에서 배웠던 실무와 이론을 결합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며 "MBA에서 배운 수업이 기업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물류전문회사인 ㈜에코비스로지스틱스의 김익준(42) 대표는 지난해 9월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동안 3곳의 대학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거쳤지만 물류 경영에 대한 시원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정보와 지식의 속도만큼 물류의 흐름 역시 속도가 빨라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공부를 놓아선 안된다"며 "인하대에 들어와 쌓은 이론과 경험, 인적 네트워킹 모두 든든한 배경지식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을 듣는다. 주말엔 가족 대신 14명의 MBA동기들과 함께 보낸다. 김 대표는 "교수나 수강생 모두 물류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는 현업 종사자들이어서 회사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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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비스품질교육원 김현지(41) 원장은 숙명여대 H-MBA 과정을 이수 중이다. 거주지가 대구라 매주 월·목요일 KTX를 타고 상경, 심야 수업을 듣는다. 수업을 마치고 무궁화호 막차를 타고 대구에 도착하면 새벽 3시가 넘는다. 학교 과제에다 회사일, 외부 강의(현재 계명문화대 관광레저학부 출강 중이다)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김 원장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동력이 서비스 산업에 있을 것이란 생각에 H-MBA에 진학했다"며 "서비스산업 전반에 대한 경영사례나 성과, 조직관리, 사례연구 등을 배울 때 많은 자극을 받고 실제 현업에서 응용한다"고 강조했다.
김형호(47) 아이투자신탁 본부장은 런던비즈니스스쿨로 유학을 준비하다 KDI국제정책대학원 자산관리경영학 석사과정(2007년 졸)을 택했다. 수업은 상상 외로 힘들어 "'혼'이 빠질 정도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렇게 좋아하던 테니스를 재학기간 중 완전히 끊었을 정도. 외국대학과 똑같은 수업환경에다 100% 영어수업에 리포트, 시험 모두 영어로 제출해야 할 정도로 강도가 셌다.
20년 가까이 펀드 매너저로 활동했지만 주식, 채권, 파생상품, 부동산의 가치평가 등 체계적이고 전문적 지식을 되짚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김 본부장은 "2년간 주말을 반납하며 고난도, 고집적도의 수업을 들어야 했다"며 "현장으로 돌아와 금융거래를 할 때 어떤 위험도 대처할 수 있는 눈이 생겼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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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MBA를 졸업한 현대하이카손해사정㈜ 박봉수(52) 대표는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원서와 씨름하고 시험과 리포트를 쓰느라 진땀을 흘렸다. 하지만 한 번도 수업에 빠진 일이 없다. "그룹 회장이 불러도 MBA수업엔 갔다"고 했다. 주말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펴 들었다.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한 덕에 평균 A학점 이상을 받았고 장학금까지 탔다. 박 대표는 "깊이 있게 몰랐던 재무관리나 회계업무 특히 조직관리, 인사, 노무, 인적자원관리(HRM) 등은 기업경영에 직접 적용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회사의 조직문화와 비전체계를 수립하며 전문컨설팅업체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직접 주도적으로 끌고갔던 것을 큰 보람으로 느낀다"고 했다.
벤처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백종진(48)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는 지난 2006년 2월 아주대 'e-비즈니스MBA' 과정에 입학, 올해 마지막 학기를 이수 중이다. e-비즈니스MBA는 주로 온라인을 통해 경영학 강의가 이뤄진다. 다른 MBA과정보다 수월할 것 같은데 백 전 대표의 답은 그렇지 않다.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을 이용해 집중적으로 MBA 수업을 들었다"며 "학사관리가 엄격해 2년간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MBA 수업시간에 배운 소비자 행동패턴과 마케팅 이론, 통계학, 경영관리 기법 등은 기업 현장에서 그대로 응용됐다. 또 최신 재무회계 실무를 배우면 회사 재무관리자(CFO)에게 재무관리나 예산, 관리통합 등에 대해 별도 보고를 받고 새로운 재무전략을 세우도록 지시한 일도 있다.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주간MBA 과정 1기인 신승엽(26)씨는 '고교생 벤처 1호'로 일찌감치 언론의 주목을 받은 재원이다. 현재 공기튜브모자, 향기속옷 같은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그린 아이디어 뱅크'의 대표인 그는 학교수업 때문에 회사보고는 구두로 받고 주로 업무를 주말에 처리한다. 수업이 빨리 끝나는 날은 회사로 출근, 전체 회의를 주재한다고 한다. 마지막 학기에 재학중인 신 대표는 "MBA 과정에 입학하자마자 현장 경험과 이론적 배경을 서로 대입하는 훈련을 줄곧 받아왔다"며 "강의실이 제3의 경영 일선처럼 느껴진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중앙대 'CAU-리더 MBA'과정에 입학한 ㈜실버방송 주인호(38) 부사장은 지난 3월 미국 출장 때문에 수업을 빠진 것 외에는 지각, 결석을 하지 않았다. 회사일을 접고 학교로 '출근'하는 일상이 반복되지만 "너무 재밌어 학교에 간다"고 말했다. 동료들과 주말이면 팀 프로젝트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공부한다. 주 부사장은 "공대 출신이어서 재무제표나 회계분석, 마케팅 전략수립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 수업을 들은 뒤 경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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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종합기업인 ㈜브랜드의 한진규(39) 대표는 지난 2002년 6월 카이스트 테크노MBA과정을 조기 졸업했다. 국내 대기업에 3년간 다니다 전직을 결심, 카이스트에 진학했고 졸업 후 벤처회사를 창업했다. 인테리어, 간판 등 다양한 디자인 관련분야에 참여, 몸집을 키운 뒤 지난 2006년 국내 중견기업의 관계사로 편입된 상태다. 한 대표는 "대리나 과장급으로 있었다면 경험할 수 없었을 재무와 인사,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의사결정 과정을 배운 것이 큰 보탬이 됐다"며 "수치와 논리적 근거를 강조하는 MBA수업이 아니었다면 벤처 창업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