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이왕표와 함께 한국 프로레슬링을 양분했던 역발산이 어린이날인 오는 5일 NKPWA(신한국프로레슬링협회) 세계프로레슬링 챔피언결정전에 출전한다. 역발산은 "196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프로레슬링의 부활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밝혔다.

이왕표와 역발산 이전 시대였던 프로레슬링의 황금기에는 어떤 스타가 있을까. 또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국 프로레슬링의 시조는 역도산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1952년 프로레슬링에 입문했다. 타고난 운동신경에 가라데 촙이라는 필살기로 동양타이틀, 세계타이틀을 연거푸 획득하며 세계적인 프로레슬러가 됐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크게 앓았던 일본 사회에서 역도산은 영웅이었다. 패전국 일본으로 미국 프로레슬러를 불러들여 격퇴시키는 장면은 일본 대중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줬다. 미국인 레슬러를 불러들여 경기 전 유리컵을 씹어먹으며 기싸움에서 완승을 거뒀던 일화는 유명하다.

괴팍한 성격과 자신감으로 똘똘뭉친 역도산은 1963년 한 야쿠자가 찌른 칼에 맞아 숨졌다. 그러나 그의 영웅신화는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현재 도쿄에 역도산의 동상이 있을 정도로 일본 내의 위대한 선수로 추앙을 받고 있다.

역도산의 뒤를 이은 사람은 '박치기의 명수' 김 일이었다. 역도산의 1기 문하생인 김 일은 혹독한 훈련을 버텨내며 미국과 일본무대에서 명성을 드높였다.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중반까지 그는 20여차례의 세계타이틀을 보유하며 세계최고의 프로레슬러로 등극했다.

그 와중에 한국의 프로레슬링은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다. 김 일의 앙숙이자 라이벌인 백드롭의 명수 장영철, 검정 타이즈를 입은 당수의 달인 천규덕, 꿀밤까기에 일가견이 있는 재일교포 여건부 등이 맹활약을 펼쳤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역도산이 전쟁의 후유증을 앓은 일본 사회의 희망으로 등장했던 것처럼, 김 일과 장영철 천규덕 등도 한국전쟁 이후 엄혹한 삶을 살았던 한국의 대중들에게 일본 레슬러들을 차례로 꺾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1965년 5개국 친선 프로레슬링대회에서 난투극을 벌인 장영철이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레슬링은 쇼'라는 보도가 흐르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 이후에도 호황을 누렸지만 스타부재와 시대변화에 둔감해지면서 서서히 인기가 시들해졌다.

2006년 장영철은 앙숙이었던 김 일과 극적인 화해를 한 뒤 사망했고, 김 일 역시 지난해 유명을 달리했다.

천규덕은 1989년 생활고 해결을 위해 양진약품에서 근무한 뒤 현재 아들인 탤런트 천호진과 함께 신한국프로레슬링협회 프로레슬링 동우회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또 여건부는 일본 도쿄에서 20여명의 프로레슬러를 양성하며 프로모터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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