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상징으로 결정한 해치(HAECHI).

질문 하나. 현재 서울의 공식 상징(symbol)은 무엇일까. 시화(市花)는 개나리, 시목(市木) 은행나무, 시조(市鳥) 까치, 시 캐릭터는 호랑이 모양의 '왕범이'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서울 시민은 거의 없다. 시민이 모르는데, 외국인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지사. 체계적인 상징 하나 없는 것이 인구 1000만명이 살고 있는 거대도시 서울의 현주소다.

지난해 서울시가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만들고 서울 상징과 슬로건, 서울색, 서울서체 개발 등을 핵심 과제로 추진해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가 6개월 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서울시 상징을 해치(해태의 원래 이름)로 결정하고, 6일 공청회를 통해 여론을 수렴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해치를 단순한 마스코트가 아니라 서울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매개로 체계적으로 활용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우고 있다.

◆왜 해치인가

서울시는 상징 개발 과정에서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시 상징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경복궁이 압도적인 1위였다. 하지만 결론은 경복궁이 아니라, 경복궁을 지키고 있는 상상의 동물 해치였다. 작업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단순한 마스코트가 아니라 서울의 정체성과 역사를 '스토리텔링(이야기)'할 수 있는 대표 상징이 필요했다"며 "그런 의미에서 정적인 궁보다는 동적인 것이 좋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지난달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공청회에서 연세대 독문과 임정택 교수는 "우리만의 미학과 내적인 가치를 더 이끌어낼 수 있는 깊이 있는 상징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기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해치는 조선시대부터 서울의 변화를 지켜본 관찰자이자, 계층과 신분을 망라해 모두에게 친숙한 수호자라는 점에서 제격이라는 평을 받았다"고 말했다.

상징을 문화 콘텐츠로 확장할 수 있느냐의 여부도 중요한 포인트였다. 서울시는 해치가 현재 마스코트인 '왕범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다양한 홍보·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IT 기술과 연계시켜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해치 유비쿼터스 트레블 서비스', 해치를 이용한 거리 퍼레이드 행사인 '소울 서울 데이(Soul Seoul Day)', 해치를 이용한 관광 상품과 캐릭터 상품 개발, 해치 거리 명소화 등이다.

서울시의 슬로건 예정안인 'SOUL OF SEOUL'과 상징 활용안.

◆해외에서는 어떻게 활용하나

해외 선진 도시들에선 이미 상징을 이용한 도시의 정체성 확립이 자리잡았다. 싱가포르 하면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언뜻 떠오르는 것이 사자 머리에 고기 몸통을 하고 있는 '멀라이언(Merlion)'이다. 멀라이언은 1964년 싱가포르 관광청의 로고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주요 관광지인 센토사섬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고, 공항과 관광 상품점에는 멀라이언을 활용한 열쇠고리, 자석, 티셔츠, 컵 등 다양한 상품이 구비돼 있다. 멀라이언은 상상 속의 동물이라는 점에서 해치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독일 베를린의 기차역과 중심가에 가면 앞발을 위로 바짝 든 곰 형태의 조형물이 들어서 있다. 곰의 이름은 '버디 베어(Buddy bear)'. 배에 지도를 그려놓은 곰도 있고, 만국기를 그려놓은 것도 있다. 예전부터 곰은 베를린의 상징이었지만 본격적으로 도시 이미지에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89년. 독일통일을 계기로 클라우스 헤어리츠 박사와 부인 에바가 거리 예술 행사로 기획한 것이 지금은 독일의 상징이 됐다.

뉴욕은 '빅 애플(Big Apple)'이라는 애칭을 관광자원으로 확장시켰다. 거리 곳곳에 커다란 사과 조형물을 세우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전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뉴욕의 상징 '빅 애플', 현재 서울시의 공식 상징 '왕범이', 베를린의 상징 '버디 베어', 싱가포르의 상징 '멀라이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