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 광장은 2002년 월드컵 때처럼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서울 성화봉송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인 6500여명이 중국 국기 '오성홍기(五星紅旗)'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A4용지부터 성인 키만한 크기까지 다양한 오성홍기가 올림픽 광장은 물론 성화 봉송길에 휘날렸다. 1인(人)1기(旗)는 기본이요, 깃발을 몸에 두르고 얼굴에 그리고 봉에 끼워 함께 휘두르는 사람도 있었다. 티셔츠에도 베이징올림픽 공식 엠블럼과 함께 오성홍기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증이 몰려왔다. 올림픽광장부터 광화문 일대를 뒤덮은 수많은 오성홍기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중국인들이 오성홍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한 중국 유학생들이 중국에서 오성홍기 직접 공수

이날 사용된 티셔츠와 오성홍기는 중국에서 대부분 공수된 것이다. 유학생 한후(22·한국기술교육대)씨는 "베이징올림픽 티셔츠 3만 벌과 오성홍기 3만 개가 행사 하루 전인 26일 중국에서 한국으로 보내와 행사 참석자들에게 전달됐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모인 중국인들은 대부분 중국 출신 유학생들이었다. 중국 유학생 단체인 '재한중국유학생연합회'가 이번 행사 때 학생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학교별로 참석자 인원과 함께 오성홍기와 티셔츠 구매 신청자를 받았다. 물품당 3만개였다. 학생측은 돈을 모아서 중국업체에 주문을 했고, 26일 중국에서 상품이 도착하자마자 각 학교로 배송했다. 이들이 행사 당일 티셔츠를 입고, 중국 국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학생들은 남은 티셔츠와 중국 국기를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해당 단체로부터 오성홍기를 구하지 못한 학생은 학부모들에게 부탁해 소포로 받기도 했다.

재한 중국 유학생만 유별난 게 아니다. 인터넷사이트 텅쉰(www.qq.com)에서는 유럽과 미국의 화교들이 벌이는 '친중국 시위'에 1만 장의 오성홍기를 보내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붉은색 하트 모형에 오성홍기를 새긴 '홍심(紅心)'도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다.

◆올림픽 앞두고 중국 민족주의 고취… “티베트 사태가 원인” 분석도

오성홍기는 영어로 'the Five-Starred Red Flag' 혹은 'the national fla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라고 쓴다.

1949년 9월27일 중국 정치협상회의(정협) 준비위원회가 중국 국기를 공모해 2992점의 후보작이 나왔고, 최종적으로 상하이 일용품 회사에 다니던 쩡롄쑹(曾聯松)의 도안이 낙점을 받았다. 전체회의를 통해 공식 국기로 선정됐으며, 중국 건국일(10월1일) 마오쩌둥이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처음으로 게양했다.

국기에 있는 별 색깔이 노란색인 이유는 중국인이 ‘황인종’임을 상징하기 위해서였다. 다섯 개 별 중 가장 큰 별은 공산당을, 나머지 네 개는 노동자, 농민, 소자산가, 민족자산가를 뜻한다. 순서는 바뀌었지만 사(士), 농(農), 공(工), 상(商)의 의미다. 작은 4개의 별이 큰 별을 향해 모여 있는 것은 '공산당을 중심으로 혁명 인민이 단결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별 5개가 왼쪽 위에 있는 것은 ‘중국 대지를 고루 비추라’는 뜻을 담았다. 가로 세로 비율은 3:2다.

이렇듯 철저한 사회주의 이론을 토대로 국기가 만들어진 것 같지만, 실상 중국의 전통주의 사상도 숨어 있다. 서울대 김월회 교수는 “중국인들이 빨간색과 별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이것이 국기에 반영된 것이고, 별이 5개인 이유도 오행사상과 연결된다”고 밝혔다.

오성홍기는 중국 헌법 제136조에 의거해 공식 보호를 받는다. 중국은 1990년 국기법을 제정해 톈안먼 광장, 국무원 및 산하기관, 군부대, 공항·항망 등에서 평일에는 반드시 오성홍기를 게양하도록 했다.(우리나라 국기법은 2007년1월 제정)

또 중국은 상업적 이미지로 오성홍기를 사용할 수 없도록 국기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지난 3월 2008 베이징올림픽 공식 스폰서 업체인 아디다스가 오성홍기와 자사 로고를 결합한 형태의 도안이 들어간 운동가방을 홍콩에서 팔았다가 출시 1주일 여 만에 전면 회수한 적이 있다.

오성홍기가 뜨는 이유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즈음해 중국 민족주의가 고취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월회 교수는 "중국인들이 평소 국기에 대해 유별난 애정이 있었다고는 보기 힘들다"며 "우리나라 2002년 월드컵과 같이 특수 상황에서 드러난 현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올림픽을 계기로 민족주의 감정을 돋우고 있고, 개인은 자신의 성취 가능성을 국가와 동일시하고, 그것을 애국주의로부터 보상 받으려는 대중심리 같은 것도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행사에서 과격한 행동을 보인 주축이 자칫 감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20~30대 중국 유학생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때 태극기로 옷을 만들고 얼굴에 태극기 문양을 그리며 "대한민국"을 외쳤던 우리나라 20~30대와, 오성홍기를 온 몸에 두르고 "지아여우 중궈!(加油 中國, 중국 화이팅)"을 외치며 성화봉송 저지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티베트 독립운동 사태가 중국인들의 오성홍기 사랑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연세대 유학중인 야오야오(20)씨는 "베이징 올림픽을 홍보하는 차원에서 중국 국기가 널리 퍼지고 있는데 티베트 시위와 대립하면서 더 부각되는 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