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신륵사 관광단지 주차장에는 요즘 텐트 140여개가 한창 설치되고 있다. 다음달 7일부터 25일까지 '여주 도자기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여주군 도예팀 조종필(38)씨는 "홍보물 7만부를 전국에 배포하고 수도권 아파트 엘리베이터 280곳에 모니터 광고도 내고 있다"며 "서울 지하철 차량 300곳에도 광고물을 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여주에서 차로 1시간 떨어진 이천시 설봉공원에도 흰색 텐트 지붕 200여개가 올라가고 있다. 다음달 10일부터 6월 1일까지 열리는 '이천 도자기축제'에서 사용할 판매 부스다. 매년 도자기 생산자들이 시기를 결정하지만 올해는 두 도시의 축제 날짜가 겹쳤다. 이천시측은 "일정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우리는 (여주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자기 주산지인 경기도 여주군, 이천시, 광주시의 삼각 경쟁이 치열하다. 매년 도자기축제를 무대로 자존심을 건 승부를 벌이고 있다. 특히 올해는 경쟁이 더 뜨겁다. 홀수 해에는 경기도가 주관해 '세계 도자기 엑스포'로 통합 진행하지만 짝수 해에는 각 시·군별로 따로 치르는 데다 올해는 3개 도시가 온 힘을 쏟아 부을 태세이기 때문이다. 세 도시의 경쟁은 삼국지에 비견된다. 도자기 공방이 가장 많고 관광객 수에서도 선두를 달리는 이천이 위(魏)라면, 그 뒤를 바짝 추격하며 새 맹주를 노리는 여주가 오(吳), 조선 도자기의 적통을 내세우는 광주가 촉(蜀)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이들 3개 시·군의 자체 집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도자기 축제를 방문한 인원은 660만여명이나 된다.
이천은 도자기축제의 원조로 올해 22회째다. 1987년 시작해 그동안 1835만명이 찾았다고 한다. 방문 외국인도 106만명에 이르고 도자기 누적 판매액은 500억원이 넘는다. 신둔면 수광리 일대에는 공방이 200곳 이상 몰려 국내 최대 도예 마을로 자리잡았다. 이천을 관통하는 3번 국도변에도 1960년대부터 생기기 시작한 도예 공방과 판매점이 줄지어 있다. 정부는 2005년 6월 이천을 '도자기특구'로 공식 지정했다.
여주는 신륵사 등 기존 관광자원과 도자기를 결합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내륙 수운을 기반으로 1970년 이전까지 도자기 생산·유통지로서의 명성을 자랑했지만 산업적 측면에서 이천에 뒤진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적극적 홍보에 나서 2004년 18만7000명에 불과하던 도자기 축제 방문객을 2006년 125만명으로 늘리며 이천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2006년에는 5억원의 축제 예산을 들여 도자기만 23억원어치 팔았다.
세 도시 가운데 가장 늦게 축제 경쟁에 뛰어든 광주의 무기는 조선시대 왕실에 도자기를 공급했던 전통과 자부심이다. 남종면 분원리 일대에 있던 사옹원 분원(分院)은 왕실에 도자기를 납품하던 관요(官窯)로 조선 최고의 도자기 생산기지였다. 당시 광주에서 제작된 '청화백자보상화당초문 접시'와 '백자철화용문 항아리'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1994년과 1997년 각각 38억원과 99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현재 광주에서 활동 중인 도예 공방은 73곳으로 이천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광주는 '고급화' 전략으로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광주시 도예팀 구일회 팀장은 "생활 자기 중심인 여주·이천과 달리 조선 백자를 낳은 장인정신을 계승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도자기의 혼을 보기 위해서라면 광주가 제격"이라고 말했다. 광주시가 여는 11회 '왕실도자기축제'는 오는 9월 26일부터 10월 12일까지 17일간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도자기 도시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해를 거듭하면서 축제 내용에 별로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자기 공방들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도 풀어야 할 숙제다. 각종 수도권 규제에 묶여 가마를 신축하거나 공장을 증설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천시측은 "도자기특구인 만큼 공장 신·증축 기준을 완화하거나 건폐율 규제를 좀 풀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