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에 따르면 인간과 유인원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지난해 4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에 생긴 대형 원숭이 우리 '프렌들리 몽키밸리'에서는 그런 사실들이 증명되고 있다. 이 우리에는 온천과 열대 밀림이 인공 조성됐고 철창도 없다. 최대한 자연환경과 비슷하게 꾸민 것이다.

생활 환경이 나아지자 과거와 달리 원숭이 사회의 '성(性)생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람 뺨치는 수준의 애정행각이 드러나면서 "영장류(靈長類)는 종(種)을 번식시키는 것 외에 쾌락도 즐긴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포옹하듯 껴안고 서로 털을 골라주고 있는 침팬지들.

조너선 밸컴이 지은 '즐거움,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원제 Pleasurable Kingdom)'에 따르면 긴코원숭이, 붉은털아프리카원숭이 등은 임신이나 월경, 부화 등의 번식기가 아닐 때도 성행위를 한다. 오히려 이들의 성행위는 대부분 번식을 염두에 두지 않은 '쾌락을 위한' 비생식 교미였다고 책은 전하고 있다.

프렌들리 몽키밸리의 연애박사는 '맨드릴'이다. 얼굴에 선명한 푸른색과 자주색 무늬가 있고 엉덩이가 무지갯빛 털로 뒤덮인 맨드릴은 만화영화 '라이온킹'에서 주술사 '라피키'로 등장했던 그 원숭이다. 에버랜드 동물원 운영팀 송영관씨는 "지금쯤 짝짓기가 끝나 2세를 볼 시기인데 작년에 오랑우탄과 침팬지사(舍) 옆에서 못된 버릇을 익혔다"고 했다. 전형적인 짝짓기만 하던 수컷 맨 동이가 예전에 하지 않던 질외(�外)사정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랑우탄과 침팬지는 어떨까. 오랑우탄은 인간의 지능에 가장 근접한 유인원이다. 애정행위를 하는 자세가 사람과 흡사하고 시간도 12~14분이나 된다. 몽키밸리 안에 있는 오랑우탄은 암컷 복란(28세), 수컷인 폴리(14세)와 알리(5살)등 세 마리다.

문제는 암컷이 수컷보다 나이가 갑절이나 많고 힘도 세다 보니 수컷의 요구에 잘 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럴 때 폴리는 알리를 '파트너'로 동원하기도 한다. 동성애인 셈인데 이 광경을 놓고 관객들 사이에서는 '성추행이다' '아니다'며 가끔 논쟁도 벌어진다. 오랑우탄은 먹이로 나오는 키위와 오이를 이용해 자위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 동물원 측은 오랑우탄이 과일을 이용해 자위하는 것을 막기 위해 키위나 오이 등은 잘게 저민 상태로 주고 있다.

침팬지의 경우 32~36일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발정기에 맞춰 거의 모든 암수가 활발히 짝짓기에 임한다. 침팬지 사회에서는 짝짓기에 참가하지 않는 동료를 성적인 능력이 아니라 '원숭이 사회 의식'이 결여된 '이상한 녀석'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16살 된 수컷 '단디'다. 사람 나이로 마흔을 눈앞에 둔 단디가 암컷에게 영 관심을 두지 않자 침팬지 사회에서 '왕따'당할 것을 걱정한 동물원 측은 단디를 독방으로 보낸 뒤 대형 LCD TV까지 설치해줬다. 화면에서는 동족들의 짝짓기 장면이 연속 방영되고 있다.

망토원숭이 가운데 수컷 미키의 별명은 '꼿꼿장수'다.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시도 때도 없이 발기하는데 원숭이 사회에서는 이를 몸이 건강한 증표로 본다고 한다. 망토원숭이 암컷들은 발정기가 되면 엉덩이 부분이 평소보다 4~5배 이상 벌겋게 달아올라 관객들은 "악성 치질에 걸린 것 아니냐"며 오해하기 일쑤다.

일본 원숭이 사회에서는 2003년 권좌에 오른 대장 원호가 독재하고 있다. 원호가 암컷을 독점하자 힘없는 수컷들은 눈치껏 대장 눈을 피해 밀애(密愛)를 즐기지만 발각되는 날이면 원호에게 얻어맞을 것이 두려워 줄행랑을 친다고 한다. 반면 유인원 중에서도 가장 원시적인 종으로 분류되는 여우원숭이는 번식기 때 격렬하게 세력다툼을 하지만 짝짓기 습성은 네발 동물과 비슷하다.

프렌들리 몽키밸리가 만들어진 이후 민망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지만 권수완 에버랜드 동물원장은 "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면 몸도 건강해진다는 평범한 자연세계의 원리가 확인되는 것"이라며 "관객들도 희한한 것을 본다는 생각 대신 자연스러운 동물들의 생활원리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