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가로(街路) 공간은 사람의 오감(五感) 가운데 네 가지 감각을 통해 '도시 이미지'로 인지된다. 굳이 순서를 정하자면 '시각→촉각→청각→후각'의 순서가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시각이 가장 결정적이어서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돼 있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울산의 가로공간 이미지는 시각적으로 어떻게 인지되고 있을까?

한마디로 어지럽고 난잡하며, 볼품도 없이 자극적이기만 하다. 앞서 다뤘던 울퉁불퉁하고 지저분한 울산 도심의 보도(步道)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 주범은 단연 간판이다.

울산 도심의 대다수 건물 앞면은 온통 간판으로 도배돼 있다. 옆면과 뒷면조차도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건물의 유리창도 커팅시트로 제작한 글자나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또 건물들마다 경쟁하듯 돌출간판을 제멋대로 내다 거는 것도 모자라 조금이라도 빈 공간이 생기면 광고용 대형 현수막을 내려 걸기 일쑤다. 건물 전체가 각종 광고간판으로 덕지덕지 뒤덮여 '마치 피부병을 앓는 사람' 같다. 그리고 도대체 본래의 건물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없을 지경이다.

태화강변 불고기단지(왼쪽)와 삼산 현대백화점 후문 앞(오른쪽)의 간판들. 아무렇 게나 돌출돼 건물들을 뒤덮고 있고, 원색적이며 자극적인 간판조명들 때문에 거리 가 화가 잔뜩 난 것처럼 어지럽고 현란하다. 이재원 교수

간판의 사전적 의미는 '상점·회사·영업소·기관 등에서 그 이름·판매상품·영업종목 등을 써서 사람 눈에 잘 띄도록 걸거나 붙이는 표지'이다. 즉 간판을 통해 고객을 불러들여 영업성과를 높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그러다 보니 우선 울산 도심 상업지역에는 간판의 개수가 너무 많다. 그래서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미간에 힘을 줘가며 살피고 또 살펴야 원하는 간판을 겨우 알아 볼 수 있을 지경이다. 크기도 문제다. 눈에 잘 띄게 하려는 욕심에 커다랗게 만들어 붙인다. 그런데 모두가 앞 다투어 그 모양이니 오히려 원하는 간판을 찾아내기가 더 어렵게 됐다.

색채도 너무 요란스럽고, 자극적이다. 눈에 잘 띄게 하려고 너도나도 원색을 쓰다 보니 가로 전체가 너무 뜨겁게 달아올라 안정감 없이 불안스럽다. 간판의 재질이나 디자인 방법도 개성적이지 못하고 천편일률적이다. 거의 대부분 갈바늄(Galvalume;알루미늄+아연 도금강판) 재질이나 아크릴로 프레임(틀)을 만들고 커팅시트로 디자인 안을 마감하는 것이 고작이다.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앞 가로 모습. 상가 건물의 간판들이 크지 않고 부드러 운 색상으로 통일감을 갖추고 있어 건물의 외관이 그대로 드러나며 가로 분위기 가 차분하고 쾌적하다. 이재원 교수

그런 간판들로 가득 찬 밤 풍경은 더욱 가관이다. 많고 큰데다 자극적이며 몰개성적인 간판들이 지나치게 밝고 휘황찬란하게 밤 거리를 쏘아보고 있다. 특히 삼산로나 태화강변 불고기단지의 야경(夜景)은 가만히 서 있어도 휘청거릴 정도로 어지럽다. 화를 내듯 부릅뜬 간판 조명들 아래를 걸어가려면 숨이 탁탁 막힐 지경이다.

쾌적한 도시 울산을 만들려면 시각적인 가로경관 형성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어지럽고 번잡하며 자극적인 울산의 가로경관을 편안하고 차분하며 개성적인 것으로 바꿔줘야 한다. 가장 우선할 일은 간판 정리다. 크기도 줄이고 개수도 최소화해야 한다.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색상도 업소의 특성을 살린 색상으로 바꾸고, 재질도 개성있게 다양화해야 한다. 건물 벽면도 간판으로 온통 채우기보다는 여백을 살려 비워두는 여유를 주어야 한다.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가로디자인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