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코가 1㎝만 낮았더라면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에게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이 말은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파스칼이 남긴 말이다. 이것은 역사가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영웅주의 사관을 반영한 말이자 은연중에 클레오파트라를 평가절하하는 유럽 남자들의 열등감이 표현된 말로도 볼 수 있다.
우리가 클레오파트라라고 지칭하는 여왕은 정확히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말한다. 알렉산더 사후 이집트를 통치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11대 손녀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성장했고 그리스적 교양을 갖춘 여인이었다. 이집트에서는 알렉산더의 후계자, 그리스 철학의 계승자, 이시스 여신으로 추앙받았지만 로마에서는 나일 강의 마녀, 이집트 창녀 등으로 불리며 정반대 이미지를 구축하게 됐다. 악티움 해전의 승리자, 옥타비아누스의 선전 전략 때문이었다.
로마의 영웅 율리우스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해 타락시켰다고 폄하되던 클레오파트라는 르네상스 시대엔 사랑과 야망, 아름다움을 구현한 고귀한 존재로 재평가 받기도 했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이집트학이 유행하면서 역사적 인물로 흥미를 끌었고, 20세기에는 소피아 로렌, 비비안 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모니카 벨루치 등 당대 최고의 미녀들에 의해 영화 속에서 되살아났다. 이 중에서도 개봉 당시 할리우드 역사상 최대의 제작비로 화제가 됐던 '클레오파트라'(1963)를 통해 역사 속 클레오파트라를 만나보자.
영화 '클레오파트라'는 역사적 일화를 중심으로 여왕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영화 초반부, 융단 속에서 반라(半裸)의 모습으로 나와 시저와 첫 대면을 하는 장면 그리고 시저의 간질병을 눈치 챈 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연구를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시저가 발작을 일으키자 응급처치를 하며 "간질은 한니발, 알렉산더 같은 영웅들만이 앓는 병"이라며 위로하는 장면에선 그야말로 재색을 겸비한 사려 깊은 여인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알렉산더 석관 앞에 시저를 데리고 가서 세계 정복의 꿈을 일깨우며 로마와 대등한 위치에서 공동의 비전을 제시하는 장면은 여왕의 정치력과 외교술을 엿보게 한다.
시저 암살 이후 이집트로 돌아온 클레오파트라 7세는 이집트의 안위를 위해 안토니우스와도 연인 관계를 형성하려 애쓴다. 이것은 영화 속에서 화려한 선상 파티와 시저에 대한 질투를 유발하는 고도의 심리전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이집트와 로마의 운명을 건 악티움 해전(B.C 31년)에서 옥타비아누스 군에게 패하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듬해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자살하고, 이집트가 로마의 속주가 되면서 클레오파트라 7세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불꽃으로 기록된다.
모계제도와 헬레니즘의 구현자였던 클레오파트라 7세는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가 황제에 올라 붙인 이름, '신성한 자'라는 뜻)의 남성 중심적인 로마 황제정의 등장하면서 한마디로 '역사의 희생양'이 됐다. 로마인 입장에서 볼 때도 자신의 지도자가 일국의 여왕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외적인 요인으로만 여왕을 평가하고 요부, 탕녀, 악녀의 이미지로 깎아내려 왜곡된 전설을 대대손손 퍼뜨렸다. 통찰력과 정치력은 폄하되고 오직 외모만이 강조된 반쪽의 신화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기록을 재해석하고 최근 발굴된 고고학적 자료들을 종합해볼 때, 로마의 영웅들을 사랑의 포로로 만든 여왕의 매력은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었다. 화술과 재치, 지적인 능력과 외교술이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이자 무기였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쓴 로마의 역사가 플루타르크조차 "클레오파트라는 7개 국어를 구사하는 능력과 현을 타는 듯 들리는 신비한 목소리를 지닌 매력의 소유자"라고 밝히고 있다.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는 할리우드 대작답게 화려한 의상과 비주얼적인 요소에 막대한 공을 들였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의 진정한 매력은 옥타비아누스 이래 베르길리우스, 셰익스피어, 파스칼 등 서양 남자들이 줄곧 주장해온 대로 '팜므파탈적 외모'에서 온 것이 아니라 지적 능력에 기반을 둔 화술과 재치, 독특한 카리스마에서 나온 것임을 배우의 대사를 통해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다. 이것은 2차 대전 이후 더욱 거세진 미국 내 여권 운동에서 비롯된 여성(여왕)의 재발견으로도 보인다. 이 영화에서 비로서 클레오파트라는 '영웅을 홀린 요부'에서 벗어나 '위대한 정치가'로 거듭났다.
■더 생각해볼 거리
①'클레오파트라의 코'는 언뜻 역사의 우연성을 강조하는 말처럼 들린다. 과연 역사가 한사람(외모, 행동)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②영국의 작가 셰익스피어와 버나드 쇼는 각각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라는 책에서 클레오파트라를 '능력과 미모를 갖춘 여왕'이라기보다 '사랑의 마녀'나 '복수의 악녀'로 접근했다. 이처럼 클레오파트라를 왜곡하고 깎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