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지구의 대기를 통과해 태양광선이 들어왔다. 지평선 위에서 밝은 오렌지색이 빛나기 시작했다. 하늘색, 파란색, 연보라색, 이제는 일곱 색깔 무지개의 서광이라! 도저히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색의 조화!"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1934~1968·사진)은 1961년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지구 대기권 바깥으로 나가면서 형언할 수 없는 우주의 신비에 넋을 잃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우주 비행사 이소연씨가 8일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드넓은 우주공간으로 날아갑니다.

가가린이 자서전 '지구는 푸른 빛이었다'(김장호·릴리아 바키로바 옮김)에서 '집단적 영웅주의의 나라' 라고 찬양했던 소련은 한때 푸른 별에서 혁명의 본부였습니다. 만약 가가린이 불의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지 않고 사회주의 몰락을 목격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은희경씨의 동인문학상 수상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 실린 단편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은 혁명의 꿈을 상실한 세대의 후일담과 우주개발경쟁에 목숨을 걸었던 소련 우주인들의 허망함을 중첩시켰습니다.

가가린의 우주비행은 문학적으로 많은 영감을 줘왔습니다. 프랑스의 원로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파리 근교의 옛 가톨릭 사제관에서 삽니다. 몇 해전 찾아갔더니 "사제관에 살고 있는 내가 어찌 신을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자신이 지은 우화를 들려줬습니다.

"가가린이 우주에서 돌아왔다. 소련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가 우주에 가보니 과연 신이 존재하던가라고 묻자, 가가린은 '신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흐루시초프는 무릎을 탁 치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신의 존재가 알려지면 공산주의가 무너지니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가가린이 교황청을 방문했다. 교황도 '신이 존재하는가'라고 물었다. 흐루시초프의 명령 때문에 가가린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다. 교황은 무릎을 탁 치면서 '내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교회가 무너지니 밖에 나가서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이 우화를 책으로도 발표한 투르니에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매도한 정치권력을 풍자했을 뿐만 아니라 신의 권위를 빌린 종교 조직의 세속적 권력화도 경계했습니다. 이 우화의 더 깊은 뜻은 우주비행을 체제경쟁을 통한 과학기술의 승리로만 보지 말라는 겁니다. 인간은 우주의 섭리를 늘 느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존재의 신비를 무한한 상상력으로 그려보라는 겁니다.

외계의 고등 생명체와 접촉하는 미래를 그린 영화 에서 여주인공(조디 포스터)은 광속으로 우주공간을 가로지르면서 "(내가 아니라)시인이 왔어야 했다"며 거대한 신비 앞에서 초라한 인간 언어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모든 사물의 밑바닥에는 물고기가 헤엄친다/벌거벗은 물고기야 나와라/이미지의 외투를 입혀주마."

투르니에가 애송하는 시구(詩句)입니다. 한국인 최초의 우주비행사 탄생을 계기로 우주 속의 한 생명체로서 각자 상상력의 외투를 저 먼 별밭까지 펼쳐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