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기차역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역은 그리운 이를 기다리는 설렘과 만남, 그리고 이별이 이뤄지는 장소로, 서민들의 애환과 정취가 배어 있다.
대전역은 ‘대전 부르스’와 가락국수, 넓은 광장 등으로 유명했다. 특히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 시 오 십 분’으로 시작되는 ‘대전 부르스’는 1959년 인기가수 안정애가 불러 히트를 친뒤 다시 조용필이 1980년대 리메이크해 부르면서 대전역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최치수가 작사하고 김부해가 곡을 붙인 이 노래는 대전역을 배경으로 이별의 아픔을 그리고 있으며, 끈적한 블루스 리듬과 애절한 가락으로 헤어지는 사람들의 비통한 심정을 잘 담아냈다.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올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의 절정 대목을 듣노라면 누구나 열차를 잡아타고 훌쩍 떠나고픈 감상에 젖어든다. 1999년 대전역 광장에는 노래 가사를 적어넣은 노래비가 건립됐다.
대전역은 1905년 경부선 철도개통에 맞춰 1904년 6월 지금의 대동에 목조로 간이역 수준으로 첫 개설됐다.
이후 1928년 6월 20일에 현 대전역사(驛舍)자리에 양측으로 두 개의 둥근 돔을 갖춘 목조 건물이 들어섰다. 중세 서구식 양식을 띤 이 건물은 6·25전쟁때 불타 버린다. 이후 임시역사를 사용해 오다 1958년 12월 28일 지금의 현대식 역사가 건립됐다.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역사가 지상 3층에서 4층 규모로 신·증축됐다.
대전역은 대전의 역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전역이 있었기에 '한밭'이라는 땅에 생명과 활기가 불어넣어졌다. 유동인구와 정착인구가 늘면서 대전은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다. 대전역 인근은 지금은 신도시에 밀려 과거와 같은 활력은 떨어졌지만 언제라도 다시 대전 발전의 구심점이 될 풍부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최근 대전역사 건립을 놓고 대전시와 동구가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나머지 4개 구청장이 동구청의 복합·명품역사 건립에 동의하고 나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동구청장은 현재의 대전역사 증축안은 대전시의 관문으로서의 상징성과 기능에 크게 못 미친다며 대형·복합 역사로 건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전시는 현재 계획으로도 선진국 역사에 뒤떨어지지 않는 데다 민자 유치시 대형 유통업체가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 가능하면 역무기능 위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한 대전역을 포함한 대전역세권 전체의 발전구상이나 구도 등 큰 틀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며 강조하고 있다.
이번 총선 쟁점으로 까지 부각되고 있는 대전역사 건립문제는 역세권 개발을 포함한 원도심 활성화 등 여러 사안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어 대전시와 동구, 코레일 등 이해 당사자 간 합의점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같다. 대전역은 역사적 상징성 뿐 아니라 시민들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자치단체간 소모적인 신경전에 앞서 시민들의 폭넓은 의견수렴이 이뤄져야 할 것 같다.
송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