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완연해지면 태화강의 겨울철새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아 지난 주말 꼬마녀석들과 태화강 하구를 찾았다. 여전히 수변과 모래톱에는 청둥오리와 흰죽지, 고방오리, 쇠오리 등의 겨울손님들이 부산하다. 덤불 가운데서 왁자지껄한 한 무리의 뱁새 떼를 만났다.
"찍찍 째째째 째재…." 수십 마리의 뱁새 떼가 덤불 속을 들락거리며 수다를 떨어댄다. 철새를 보러 온 우리의 꼬마 뱁새(?)님들은 이 광경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같이 오신 아주머니들도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찾은 듯 뱁새에 눈이 꽂혀 있다. 한동안 풀섶 앞에 쪼그리고 앉아 쬐그만 뱁새들의 재롱잔치를 흐뭇한 마음으로 감상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은 '제 분수를 알라'는 뜻이다. '뱁새는 작다'는 의미가 옛 속담 속에도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뱁새를 제대로 알게 되면 다시는 그 속담을 쓰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이 작은 뱁새에게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아니 악연에 가까운 관계에 있는 새가 있는데 바로 뻐꾸기다. 뻐꾸기는 뱁새와 상대도 안될 정도로 큰 새이다. 그러나 그 덩치 큰 뻐꾸기가 번식하는 방법은 철저히 뱁새에게 의존하고 있다. 이른바 탁란(托卵·다른 새의 둥우리에 알을 낳아 기르게 하는 번식법)에 의해서다.
뱁새가 4월에서 7월 사이에 둥지를 지어 알을 낳을 때쯤이면 뻐꾸기 암컷이 몰래 뱁새의 둥지에 큼직한 알 하나를 낳고 사라져 버린다. 뱁새가 알을 품어 부화시키면 뻐꾸기 새끼는 뱁새의 새끼를 밀어내고 둥지를 독차지한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뱁새는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 자신보다 5~6배가 큰 뻐꾸기 새끼를 길러낸다. 터무니 없어 보이는 일이지만, 그 만큼 뱁새의 모성애가 강한 때문이다. 감히 황새가 뱁새의 모성애를 따라올 수 있을까! 이쯤 되면 시끄럽기 그지없는 뱁새의 수다는 억울한 하소연일지도 모르겠다.
통상 뱁새라고 부르지만, 학술적 이름은 '붉은머리오목눈이'다. 참새목 딱새과의 텃새로 물가나 논 밭 가의 덤불 속이나 갈대밭 등에서 생활한다. 수십 마리씩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습성이 있으며, 곡식의 낱알이나 풀씨,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벌레를 잡아먹는 이로운 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