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청룡시절부터 열성팬인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야구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LG 팬이 된 안준모(32) 씨는 LG 트윈스 장내 방송 캐스터로 6년째 마이크를 잡고 있다. 그러나 그를 만난 장소는 야구장이 아닌 강남에 있는 한 외국계 생명 보험회사의 사무실이었다.
라디오 전파를 통해 야구 중계가 큰 인기를 끌었던 1980년대 녹음해 놓은 야구 중계를 밤 새워 숨죽여 들으며 선수 한명 한명의 플레이를 상상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안준모 캐스터는 2003년 LG가 홈구장 팬들을 위한 장내방송 캐스터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지원했고 당당히 합격했다.
“스무 명이 넘게 왔더군요. 마지막 관문이 황당했죠. 소리 죽여 놓은 야구 중계 화면을 보고 중계를 해보라는 거였어요(웃음). 혼자 주절주절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모르게 한참을 떠들었는데 운 좋게도 최종 합격자 두 명 가운데 뽑혔죠.”
그는 “좋아하는 야구를 원 없이 볼 수 있고 거기에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제 목소리로 전해주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현재 안준모씨는 전형적인 투잡(Two-Job )족이다. 평상시와 비시즌 때는 보통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회사에 출근하지만 LG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야구장이 또 다른 직장이 된다.
“중계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요(웃음). 좋아서 하는 일인데 돈까지 주니까 좋죠? 액수요? 그 건 밝힐 수 없어요 (웃음).”
‘LG 편파 방송’으로 불리는 이 자체 방송은 이미 LG 팬들에겐 널리 알려져 있다. 이기고 있거나 좋은 내용으로 경기를 펼칠 때는 칭찬을 쏟아내며 분위기를 이끌지만 큰 점수 차로 실망감을 줄 때는 가차 없이 그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혹여 상대편이 에러나 어이없는 플레이를 하면 그 날의 수훈선수를 상대 팀 선수로 정하며 기쁨을 감추지 않는다.
한마디로 ‘LG의, LG에 의한, LG를 위한’중계 시스템이다.
“저를 잘 모르는 (LG)선수 많아요. 제가 중계를 이유로 귀찮게하면 ‘혹여 경기에 지장을 주주나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덕 아웃은 잘 가지 않는 편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선수 옆에 가면 아직도 떨려요(웃음).”
그는 2003년 개막전 방송 데뷔 첫 날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경기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해설을 맡기로 되어있던 이병훈 위원이 나타나질 않는 거예요. 결국 혼자서 30분을 떠들었죠. 얼마나 당황 되던지. 그런데 희한하게도 1회 초가 끝나고 1회 말이 되니까 적응이 되고 맘이 편해졌어요. 진짜 죽다 살아났죠. 이 위원이요? 돌잔치 다녀오느라 늦었다고 하더군요(웃음).”
안준모 캐스터는 최근 들어 장내 방송을 듣는 관중수보다는 인터넷을 이용해 듣는 청취자 수가 더 많다며 특히 TV 중계가 없는 날이면 그 수는 큰 폭으로 상승한다고 전했다. 100% 철저하게 LG 팬의 관점으로만 중계를 하다 보니 타 팀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어 나머지 7개 구단의 열성팬에겐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란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이후 우리 LG가 4강 진출에 계속 실패하고 있어요. 혹여 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자괴감도 들고.”
방송을 시작한지 몇 년 간은 팬의 심정으로 중계를 했다고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흥분하고 집어 치우라고 하고 이 게 무슨 프로선수냐며 제 감정을 그대로 노출했죠.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팀 성적부진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서 팬들의 질타와 원성을 어느 날 부턴가 제가 자제시키고 있더군요. 해탈의 경지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몇 번 모 방송국에서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죠. 그런데 고민할 것도 없이 단번에 ‘노’라고 답했죠. 제가 좋아하는 팀만을 위해서 하고 싶어요. 공중파나 케이블 TV의 중계 팀은 저보다 훨씬 더 많은 자료와 소식을 전해 듣고 알고 있죠. 하지만 저만큼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낼 자리는 아니잖아요. 전 지금 이 자리가 좋아요. 백발이 될 때 까지 LG 장내 방송 캐스터, 이 일을 하고 싶어요. 물론 구단에서 써 주시면 말이죠(웃음).”
안준모 캐스터는 전문가 이상으로 야구를 잘 아는 마니아의 수준 높은 팬들이 늘고 있어 갈수록 방송이 조심스럽고 어렵다면서 특히 비운동인 출신이라는 한계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산‘인 것같다는 남다른 고충을 털어 놓기도 했다.
안준모 캐스터는 이제는‘LG 편파 방송’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LG 구단 전담 방송’으로 불리고 싶다며 마지막 인사말을 전했다.
“야구장에 들어서면 어릴 적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떨리고 행복합니다. 부산 팬들이 가을에도 야구하자고 그러는데요. 저는 이렇게 외칩니다. 제발 가을에 중계 좀 해보자구요. 올해는 그렇게 되겠죠?”
홍희정 KBS 스포츠 전문 리포터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제보및 보도자료 osenstar@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