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 온천가 아타미(熱海)에 남녀 모두가 "오네상(언니)"이라고 부르는 할머니가 있다. 일본 최고령 현역 게이샤(藝者), '고킨(小金·게이샤의 예명) 언니'다. 1909년생으로 작년 백수(白壽·아흔아홉)를 넘긴 데 이어 올해 우리 나이로 100살을 맞았다. 일본의 게이샤는 한국의 '기생'에 비유된다. 왜 그는 '현역 100살'을 고집하는가?

일본 최고령 게이샤 고킨(小金)의 100년 . 왼쪽부터 소학교 때 , 게이샤의 세계에 몸을 맡긴 열여덟 견습생 시절, 정식 게이샤로 성장한 이후, 맨 오른쪽 사진은 이달 초 게이샤 훈련장을 나서는 모습

아타미에 살고 있는 '고킨 언니', 를 찾아갔다. 게이샤 훈련장과 공연장인, '겐반(見番)'에서 만났지만 "옛날 사진이 집에 있다"며 집으로 데려갔다. 걸음걸이도 확실하고 목소리도 정정했다. 요즘도 한 달에 4번 '겐반'에서 열리는 '게이코(稽古·게이샤 합숙훈련)'에 나간다. 대화하는 동안 할머니는 '논키(呑氣)'란 단어를 자주 썼다. '만사 태평한 성격'이라는 뜻이다.

할머니는 책상에 있던 봉투에서 흑백사진을 한 장 꺼냈다. 소녀 사진이었다. 현대적인 이목구비다.

"소(초등)학교 때 내 사진. 야마나시(山梨)현의 고후(甲府)에 있는 와카마츠(若松)라는 곳. 화류계가 있던 곳이지. 80년도 훨씬 지났으니 지금도 화류계가 있는지 모르지만. 언니가 어렸을 때부터 고후에 있었어. 언니는 할아버지 빚 때문에 게이샤를 했지."

―언니와 함께 살았나요?

"언니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그 후 어머니가 재가를 해 나를 낳아서 언니와 열아홉 살 차이였어. 아버지는 달랐지만 나를 자식처럼 키웠어요. 언니는 효녀였으니까. 어머니가 '너를 돌볼 수 없다'며 (게이샤를 시키라고) 나를 언니에게 보냈어."

―그럼 고향이 고후?

"아니, 도쿄 아타고야마(愛宕山). 언덕이 있고 방송국도 있는 곳. 천하의 아타고야마를 몰라?"(일본 공영방송 NHK의 전신인 도쿄방송국이 1925년 일본 최초의 라디오 방송을 한 곳이다.)

―고후에서 게이샤를 시작했어요?

"그래요. 너무 (게이샤 하는 게) 싫었어.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는데. 학교가 좋았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부모가 시킨 일이니."

―언니에게 (게이샤) 수업을 받았겠네요?

"아니, 옛날엔 여염집에서도 춤을 배웠으니까."

―몇 살이었어요? 한교쿠(半玉·게이샤 견습생)를 시작한 게.

"열셋, 열넷, 그 정도였지."

할머니는 흑백사진을 한 장 더 꺼냈다.

"(첫 번째 사진에서) 4~5년 지난 다음. 열여덟 무렵. 여전히 한교쿠. 뒤 배경은 도쿄 아카사카(赤坂)."

―료테(料亭·요정)인가요?

"아니, 오키야(置屋). 여기 있다가 요정으로 불려가는 것이지." '오키야'를 일한사전에서 찾으면 '포주집'으로 나온다. 하지만 한국 같은 '포주집'은 아니다. '아타미 게이기 오키야(熱海藝妓置屋) 연합조합'이란 번듯한 조직도 있다. 이걸 '아타미 기생포주집 연합조합'이라고 번역하면, 아타미 사람들이 무척 화를 낼 것이다. 조합 측은 오키야를 '게이샤가 소속된 에이전트'라고 설명했다.

―옛날 아카사카 추억 좀 얘기해 주세요.

"여전히 한교쿠(견습생) 시대였으니까. 밥을 제대로 먹기도 힘들 때였는데 무슨 추억? 젊을 때였으니까 늘 배고프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침밥을 오전 11시, 12시에나 먹어. (사진을 가리키며) 이 머리, 가발이 아니야. 아침에 (머리를 해주는 곳에서) 머리를 하고 식당에서 밥을 사먹지. 전부 내 돈으로. 전쟁 전, 지금과 다른 시대였어."

―요정에서 어떤 일을 했어요?

"그때는 예의범절이 확실했지. 문을 여는 법, 들어가는 법, 인사하는 법, 술을 따르는 법, 움직이는 모든 것이 절도 있었지."

―오키야에서 예의범절을 따로 배웠나요?

"메이지(明治:1868~1912년 메이지 일왕 집권기)였으니까 의자도 없었고(정좌법을 배웠다는 뜻). 부모가 엄격하고 예의를 안 지키면 시끄러웠으니까. 다다미(疊·왕골로 만든 바닥재) 모서리를 따라 걷게도 시켰지. 예의범절은 여염집에서 다 배웠어.

―아카사카 다음엔?

"도쿄 하쿠산(白山)." 도쿄대 캠퍼스가 있는 혼고(本鄕) 근처로 학구적인 이미지가 있다.

―하쿠산에도 화류계가 있었나요?

"멋진 화류가였지. 유명한 곳들에 비해선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고라쿠엔(後樂園)에 큰 요정이 있어서 자주 불려다녔지. 그리고 쇼와 33년(1958년) 아타미로 갔으니까 20대부터 40대까지 죽 하쿠산에서 보냈어."

―하쿠산을 떠난 이유는?

"그(여자가 '그'라고 말하면 일본에선 애인을 뜻한다)가 죽어서."

―어떻게 만났나요?

"일본은 여름에 덥잖아. 모두들 평상에서 바람을 쐬는데, 하쿠산에 있는 신사(神社) 근처에서 바람을 쐬러 내려온 그를 만났지."

―결혼했어요?

"결혼은 무슨? 그 남자, 가정이 있었어. 옛날 게이샤는 결혼 따윈 생각도 못 했어. 지금 젊은 게이샤는 '결혼, 결혼' 하지만 옛날 게이샤 아이들은 생각한 적도 없어."

게이샤는 '사랑은 해도 매춘은 안 한다'는 원칙이 있다. 바꿔 말하면 '매춘은 안 해도 사랑은 한다'는 얘기다. 옛날 게이샤에겐 '단나(旦那)'란 존재가 있었다. '단나'는 '남편'을 뜻하지만, '게이샤의 단나'는 게이샤의 사랑을 받는 대신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남자를 뜻했다.

―나이 차이는?

"아홉 살 위. 죽은 지 이제 50년 지났지. 병을 내가 발견했어. 아내는 만날 질투만 하면서 병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센다기(千�木)에 있는 병원에 내가 데려갔지. 암이었어. 크리스마스에 괜찮아져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해가 바뀌고 금방 끝나버렸지."

―아타미와는 무슨 인연으로?

"이번에도 열아홉 위 언니의 게이코(稽古·게이샤 합숙훈련소) 친구에게 소개를 받았어요. 언니는 공부가 싫고 예(藝)를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남편이 죽고 다시 화류계로 나갔지요. 아타미는 정월에 여행 가는 곳인 줄만 알았지, '오키야'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3일 만에 아타미 여기저기를 알게 됐지요. 당시 아타미는 아주 손님들로 붐비던 곳이었으니까."

―옛날엔 아타미에도 게이샤가 몇백 명씩 있었는데, 언제부터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큰 연회(宴會)가 없어졌어요. 언제부터랄까? 손님 300명이 넘는 연회가 연중으로 있었는데, 이제 그런 것 없어졌지요. 요즘엔 거의 '고마(규모가 작은 술자리)'이지요. 5명에서 10명 정도. 사실 이 정도가 딱 좋지."

하지만 지금도 아타미는 일본 최대의 게이샤 화류계다. 230여 명의 게이샤가 아타미에서 일한다. 일본 전국 게이샤의 10%에 달한다.

―거품시대(1980년대 후반 일본의 호황기)까지 였나요?

"그보다 전. 클럽이 생기고, 가라오케가 생기고 나서 대규모 연회는 없어졌지. 다들 기호에 따라 뿔뿔이 흩어지거든. 이런 것이 없을 땐 모두 료칸(일본 여관)의 연회장에서 시작해서 연회장에서 끝냈지. 요즘엔 호스티스나 가라오케가 역할을 하지만, 예전엔 술자리 흥을 돋우고 노래 반주까지 모두 게이샤가 했지. 저녁 6시에 시작해서 2차까지 하면 10시지요. 어떤 때는 새벽 2시까지도 일했는걸. 지금 술자리는 금방 끝나요. 대개 1차로 끝이지요."

일본 게이샤의 술자리는 2시간을 한 단위로 한다. '히토자시키(一座敷)'라고 부른다. 2차까지 이어졌다는 것은 2시간을 더 연장했다는 뜻이다.

―한국에선 50세가 넘으면 당연히 화류계에서 졸업인데, 게이샤를 계속 하셨네요.

"그때는 물론 '지카타(地方·샤미센 연주 역할)로 일했지." 샤미센(三味線)은 일본의 전통 현악기다.

―'다치카타(立方·춤을 추는 역할)'는 언제까지 했어요?

"전쟁 전까지. 어렸을 때부터 게이샤 일이 싫었거든. 게이샤가 싫어서 한때 신바시(新橋·도쿄의 중심가) 카페에서 일한 적도 있었어. 하지만 곧 화류계로 돌아갔지."

―결국 100살까지 게이샤를 하셨네요. 게이샤가 천직(天職)이라고 생각하세요?

"천직은 무슨. 달리 먹고살 게 없으니까 한 거지. 인생은 이상해. 싫다고 싫다고 울면 더 그 일을 하게 돼. 난 100살까지. 어릴 때는 부채를 들고 춤을 추고, 늙으면 샤미센을 연주하고. (한쪽 벽을 보면서) 여기에 일생 사용하던 샤미센을 상자에 잘 넣어서 기대두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다른 사람에게 줬어. 100살이 되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가족도 형제도 아무도 없으니까, 죽으면 난장판이 될 테니까."

―요즘에도 손님과 이야기를 잘하세요?

"(손님이) 전부 내 나이 밑이니까 얘기가 하나도 안 통해."

―자녀도 없으시고 형제도 다 돌아가셨는데, 쓸쓸하지 않으세요?

"아니, 안 쓸쓸해. (한쪽 벽에 있는 불단·佛壇을 가리키면서) 부처님이 여기 잘 계시니까. 먼저 죽은 가족이 다 부처님이 돼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