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맞춤 신사복만 고집하며 양복을 지어 온 '양복쟁이'가 명예박사가 됐다.
부산의 토종 양복점 브랜드인 '당코리 테일러' 대표인 이영재(61·사진)씨는 28일 부산 부경대학교에서 패션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디자인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이씨가 양복 짓는 일을 시작한 것은 1969년 22세 무렵. 결핵 때문에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경남 진해의 산사(山寺)에서 요양하고 있던 시절 고향 친구로부터 양재학원을 다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재단사가 내게 제격이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내 병을 옮기지 않고 혼자서 할 수 있고, 손재주를 최대한 살릴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두메산골 촌놈이 멋쟁이가 될 수 있는 직업 아니에요.하하"
부산의 양재학원을 다닐 땐 "얼마나 더 살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쉬지 않고 배웠다. 덕분에 6개월 과정을 불과 19일 만에 끝냈다. 이씨는 지금도 하루를 8만6400초로 나눠 쓴다. 이렇게 '지독한' 노력으로 이씨는 25세에 최연소 국가기능검정 재단 1급 자격을 땄다. 젊은 시절엔 "뼈와 근육 등 인체 구조를 완전히 알아야 더 좋은 양복을 지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대중탕의 목욕관리사(일명 때밀이)를 하기도 했다.
재단사 입문 7년 만인 1977년 그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당코리 테일러' 브랜드를 단 자신의 양복점을 열었다. 이씨는 "한창 땐 한 달에 300~400벌씩 양복을 만들었다"며 "맹장 수술을 한 다음 날에도 일하다가 수술 자리가 터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지금까지 지은 양복만 10만 벌이 넘을 것이라 했다.
그에겐 단골이 많다. 1987년 부산미국문화원장으로 있을 때부터 이씨가게에서 옷을 지은 알프레도 케네니씨는 주 벨기에 대사로 있는 지금까지 이씨를 찾는다.
작년 여름엔 휴가를 내서 직접 한국에 오기도 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10여 년 전 알게 된 나이지리아 통상부 장관의 옷을 맞춰 주기 위해 이씨는 지난해 가을 런던까지 가기도 했다. 1970년부터 30년 가까이 매년 2번씩 '올바른 양복 입기'를 알리는 쇼도 열었고, '옷은 사람이다' 등 책도 3권이나 냈다.
안타깝게도 이씨는 3년 전 간암에 걸려 투병 중이다. 힘든 항암치료를 받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옷감을 누비는 바늘을 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