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안양 초등학생 우예슬(8)양의 것으로 보이는 시체 일부가 18일 발견됐다. 피의자 정모(39)씨가 "아이 시체를 버렸다"고 지목한 경기도 시흥시 시화호 군자천 하류지역에서다. 이에 따라 정씨가 혜진·예슬 두 어린이의 시체를 훼손해 유기한 혐의는 확인됐다. 정씨는 우발적인 교통사고로 두 어린이를 숨지게 한 뒤, 사고 사실을 숨기기 위해 시체를 처리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정씨의 진술은 드러난 정황과 모순되며 혐의를 감추려는 거짓말"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경찰은 정씨가 빌린 차량에서 나온 두 아이의 혈흔 등 지금까지 확보한 증거와 정황만으로 살인 혐의를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보고 이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예슬양 DNA와 대조
이날 오전 9시부터 경찰과 해병대 전우회 회원, 대북 첩보부대 예비역 등 모두 150여명이 군자천 주변에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다. 경찰은 피의자 정씨를 데리고 낮 12시부터 2시간 동안 시체를 버린 지점을 지목하도록 시켰다.
그러나 어린이 시체를 발견한 것은 수색이 진행되고 7시간쯤이 지난 후였다. 오후 4시43분쯤 시흥시 정왕동 군자천 군자8교 근처 하천 가장자리 돌에 시신 일부가 걸쳐 있는 것을 해병대 전우회 손선욱(44)씨가 발견했다.
손씨는 "(발견된 시신 일부가) 녹색 이끼와 진흙에 뒤섞인 채 물에 불어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원활한 수색을 위해 하천의 물을 빼내, 군자8교 일대는 평소보다 수심이 30㎝ 낮아진 상태였다.
이어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시신의 다른 부위와 혈흔이 묻은 천조각도 잇따라 발견됐다. 경찰은 수습한 이 신체 부위와 천 조각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 예슬양의 DNA와 대조하고 있다.
◆정씨가 밝힌 범행 과정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아직까지 '살인'이 아니라 '사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씨는 작년 12월 25일 밤 9시쯤 집 부근인 안양 문예회관 근처에서 렌터카를 몰고 가다 두 어린이를 치어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과실 사고'였다는 주장이다.
정씨는 사고를 숨기기 위해 이들 시체를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집으로 돌아온 뒤 화장실에서 절단했다고 진술했다. 이때 집에 있던 양날톱을 사용했으며, 이튿날 새벽 렌터카를 몰고 다니며 시체를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혜진양 시체는 호매실 나들목 부근 야산에 묻었으며, 땅이 얼어서 구덩이가 잘 안 파여 예슬양 시체는 시화호 근처 개천에 버렸다고 했다. 정씨 진술대로 두 곳에서 시체가 발견됐다. 범행에 사용한 톱은 동네 공터 쓰레기통 등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집 안에서 혈흔 발견
경찰은 호매실 나들목에서 발견된 시신이 실종된 혜진양으로 밝혀진 지난 13일부터 정씨 집에 대한 정밀감식을 거듭했으나, 핏자국을 찾는 데 실패했었다. 정씨는 이에 대해 "비닐을 깔고 범행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날 경찰은 정씨 집을 다시 한 번 정밀감식을 한 결과, 화장실 벽에서 2~3㎜ 크기의 혈흔을 발견했다. 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맡겨 DNA 분석을 시작했다. 피의 양이 워낙 적어 주인을 밝힐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혜진·예슬양은 숨진 지 몇 시간도 안 돼 시신이 훼손돼, 당시 혈액응고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따라서 엄청난 양의 혈액이 나오기 때문에 물로 씻어내더라도 다량의 혈흔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경찰은 정씨가 집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시체를 토막 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포르노 동영상 700편
정씨가 만약 범인이라면 이 같은 잔혹한 범죄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정씨의 집에 있던 컴퓨터에서는 포르노 동영상 700편이 발견됐고, 이 중에는 '아동'이 등장하는 음란물도 있었다. 정씨가 어린이에 성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물론 이는 직접적인 증거물은 되지 않는다. 정씨의 집에서는 공업용 본드도 발견됐다. 그가 본드를 마신 환각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찰은 수사하고 있다.
◆정씨 오락가락 진술
정씨는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범행을 강하게 부인하거나 수시로 말을 바꾸며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이 정씨를 처음 조사한 것은 혜진·예슬양 실종 직후인 지난 1월 초순. 당시 정씨는 사건 당일(작년 12월 25일) 행적에 대해 "집에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 말을 믿고 정씨에게 더 이상 혐의를 두지 않고 넘어갔다. .
하지만 지난 16일 체포된 직후에는 "사건 당일 오전에는 산본역에서 술을 마셨고, 오후 6시에 일어나 대리운전을 위해 명학역 육교 주변에 있다가 오후 9시에 들어왔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이 사건 당일 오후 9시50분쯤 그가 렌터카업체에서 쏘나타 승용차를 빌린 사실을 들이밀자, 또 말을 바꿨다. "대리운전 영업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대리운전 업체 대표는 "근무기록을 확인하니 그날 정씨는 근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혜진·예슬양 살해 혐의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씨는 충남 보령 모친 집에서 체포돼 안양경찰서로 이송된 뒤 취재진 앞에서 "두 아이를 모른다. 내가 죽이지 않았다"며 거짓말을 했다. 그는 "억울하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경찰이 정씨 진술의 모순을 파고들며 계속 추궁하자, 체포 15시간 만인 17일 낮 12시쯤부터 "다른 아이(예슬양을 지칭)를 시화호 근처에 버렸다"며 범행 일부를 자백했다.
하지만 이제는 "(살인이 아니라) 교통사고였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정씨는 이날 구속영장을 신청한 시점까지 '교통사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