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하나.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는 것 두 가지는? 하나는 바퀴벌레, 나머지 하나는 고부갈등이란다. 그만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질적이고 해결하기 어렵다는 뜻일까. 올 봄 결혼을 앞둔 신부라면 상견례에서 본 예비 시모의 깐깐한 표정이 떠올라 지레 잠이 안 올 터. 하지만 겁먹을 필요 없다. 다양한 유형의 고부 갈등을 상담해 왔고, 최근 '고부관계의 심리학'(학지사)을 펴낸 숭의여대 가족복지과 박정희 교수는 "고부관계에 정답은 없다. 자기만의 고부 스타일을 창조해 가면 된다"고 조언한다.

◆며느리 속옷까지 손빨래, 애정과잉 시어머니도 있다

일단 시어머니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에서 벗어나자. '시어머니=교활·악독'이라는 구시대 전형을 깨뜨려야 순조롭게 출발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실제 상담을 해보면 시어머니의 유형이 매우 다양하다고 말한다. ▲'아들 집착형'이 가장 흔하지만 ▲'아들 불화형'으로 사사건건 부딪치는 모자(母子)도 있어 중간에서 난처한 며느리도 의외로 많다. ▲'애정 과잉형' 시어머니도 있다. 맞벌이 아들 내외 위한다고 시간만 나면 아들·며느리 속옷 세탁은 물론 장롱 속까지 정리해 며느리를 기함시킨다. ▲요즘은 고학력 '엘리트형' 시어머니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며느리들이 늘었다. '옷차림에 격이 없다' '경제 상식 좀 쌓아라' 등등 지적인 잔소리 탓. ▲반대로 '궁상형' 시어머니 때문에도 고민한다. "며느리가 안 신는 구두, 착용 안 하는 목걸이가 있으면 당신이 재활용하겠다며 죄다 수거해 가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부갈등의 근원이 되는 시어머니의 심리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들을 낳은 여성'으로 자신의 권위를 유지해온 시어머니에게 아들의 결혼은 곧 그 권위를 상실한다는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 "분명한 건 며느리가 고민하는 만큼 시어머니 역시 며느리와 잘 지내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궁리한다는 사실이죠."

◆욕심은 금물… 잘 보이려고만 하니까 꼬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건강한 고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박 교수는 우선 ▲"'엄마와 딸처럼 다정하게 지내겠다'는 욕심을 거두라"고 충고한다. 친정어머니의 상을 시어머니에게 옮겨놓고 비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는 것. 어디까지나 '배우자의 어머니'라는 걸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와 예의를 갖춰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고슴도치와 같죠.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서로를 찌르거든요." ▲너무 잘 보이려고만 애쓰는 것도 관계를 꼬이게 한다. "조금 미운 며느리로 찍혀도 자기 의견은 그때그때 정확하게, 단 공손하게 전달하라"는 것이 박 교수의 조언. "착한 며느리가 돼야 한다는 강박에 무조건 참고 받아들이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게 가면이었다는 오명을 쓰기 십상이죠." ▲남편에게만 중재 역할을 떠맡기는 것도 위험하다. 어린애에게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묻는 것처럼 남편에게 '어머니냐, 아내냐'를 선택하게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부부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지 합의한 뒤 의견을 함께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어머니도 여자…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라

물론 ▲며느리로서 해야 할 책임은 누가 시키기 전에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직장에선 나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잖아요. 그런데 가족들에 대해서는 그 노력의 10분의 1도 안 하고 푸념만 하죠." ▲시어머니의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는 것도 지혜로운 처세다. "대학교수인 시어머니로부터 허구한 날 '너는 왜 그렇게 옷을 못 입니' '신문을 안 읽니' 하는 핀잔을 듣는 며느리가 있었는데 그걸 푸념만 하지 말고 거꾸로 '어머니 덕분에 내가 많이 세련돼지겠다, 똑똑해지겠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훨씬 덜하다고 충고해 줬죠." ▲'시어머니도 여자'라는 연대감도 갈등해소에 요긴하다. '같은 여성'으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소통하라는 것. "이해받기 위해 '나'를 조금씩 노출하는 거죠. 이를테면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상사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는 푸념, '지금보다 여성들 삶이 더 혹독했던 시대를 어머니는 어떻게 견디셨느냐'며 공감 화제를 끌어내는 겁니다."

◆싸우되 잘 싸워라…열쇠는 당신이 쥐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들면서 가족이 '되어'가듯 싸우면서 서로 간의 '규칙'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단, 잘 싸워야 한다. "잘 싸운다는 것은 결국 잘 듣고 잘 말한다는 뜻이에요. 상대의 말은 제대로 듣지 않고 저 말을 어떻게 치고 들어갈 것인가만 궁리하면 해법은 보이지 않겠죠." 고부관계뿐 아니라, 부부, 부모자녀 관계도 마찬가지. "지레짐작하지 말고 직접 듣고 말하세요. 큰 일은 참다가 사소한 일에 분노하고 폭발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답니다."

건강한 고부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란 이렇듯 쉴 새 없이 전술을 짜고 치열하게 잔머리를 굴려야 하는 과정. 죽어도 못하겠으면 결혼, 안 하면 그만이지만 죽어도 해야겠다면 고부갈등을 인생의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이자. 내 인격을 한층 성장시키는 절호의 기회! 열쇠는 당신이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