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산(35·본명 김은영)은 말로, 나윤선과 함께 한국 재즈계를 이끌고 있는 여성보컬리스트 ‘트로이카’ 중 한 사람이다. 지난 2월 25일 고혹적인 눈을 가진 그녀가 본사 스튜디오에 매니저와 함께 들어왔다. 매니저는 바로 그녀의 여동생(김규남). 두 사람은 다르게 생겼지만 느낌이 비슷한 자매였다. “1남 5녀 중 넷째예요. 오빠가 맨 위이고, 큰 언니는 한문선생님 하다가 시집갔어요. 둘째는 주부, 셋째는 저, 넷째는 제 매니저, 다섯째는 신림동에서 경찰간부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제일 예뻐요.”
웅산(雄山)이라는 예명은 법명이기도 하다. “17세 때 비구니가 되려고 충북 단양의 구인사에 들어갔어요. 그곳의 스님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불교학자이고 친척 중에 스님이 많다고 했다. “저도 어릴 때부터 가부좌를 하고 반야심경을 읊었어요. 절에도 자주 갔고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서로를 미워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어요. 어렸지만 깊은 수양을 해서 중생을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청량리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충북 단양 구인사로 갔어요.”
그녀는 그날부터 1년 반 정도를 절에서 지냈다. “집 나간 후 두 달 뒤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어요.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절에 있다고 하니까 아빠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좋아하셨어요. ‘드디어 우리 가족 중에도 스님이 하나 나오는구나’라면서 말이죠.”
웅산은 절에서 지내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고 한다. “늘 웃고 다녔어요. 스님들한테 귀여움도 많이 받았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4시까지 예불 드리고 아침 밥 준비했어요. 식사 후에는 산에서 일하다가 해질 무렵 돌아왔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면 공부에 대한 미련이 문득 문득 되살아났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불경은 노래하듯이 읊었어요. ‘공부’와 ‘음악’이라는 두 단어가 저를 다시 속세로 이끌었어요.”
더 이상 수행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삼배를 드리고 떠나겠다고 하자 주지스님은 ‘중질이나 하지 왜 속세로 나가려 하느냐’라면서도 강하게 붙잡지 않으셨다고 한다. “저는 이미 음악으로 수행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상태였죠. 불교와 재즈는 자유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통하는 면이 있어요. 수행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욕심을 내면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거든요.”
속세로 나온 웅산은 상지대 중국어과(93학번)에 진학했다. “외국어 배우는 것을 좋아했어요. 덕분에 지금은 중국어, 일어, 영어로 노래를 부르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요.”
대학 시절 그녀는 교내 록그룹 ‘돌핀스’ 보컬로 활동했다. “그때는 록이 제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어요. 원래 제가 한곳에 빠지면 ‘올인’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러다가 친구가 건네준 빌리 할리데이의 노래를 듣고 재즈라는 장르에 완전히 매료됐다. “‘I’m a fool to want you’를 듣는데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요. 그때 빌리 할리데이에게 받았던 큰 감동을 제가 관객에게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995년 12월에는 우연히 타악기 연주자 류복성씨를 만나게 됐다. “이듬해 1월부터 류복성·신관웅 선생님과 함께 무대에 섰어요. 하지만 한국에는 재즈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생각보다 적었어요.”
그래서 그녀는 일본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됐다. “1998년부터 오사카 공연을 시작으로 간사이 지방을 거쳐 도쿄로 갔어요. 지금까지 500회가 넘는 공연을 한 것 같아요. 요즘도 1년에 서너 차례 전국 투어를 하죠.”
일본의 열성팬들은 그녀를 ‘웅사마’라고 부른다. 웅산의 1집 앨범 ‘Love Letters’도 일본에서 먼저 발매된 후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가요 앨범을 내자는 제안만 들어왔어요. 그러다가 일본에서 먼저 재즈 앨범을 내자는 제안이 들어왔죠.”
1집 앨범은 게이치 이시바시가 프로듀서를 맡았고 베니 그린(피아노), 로니 플랙시코(베이스), 콘래드 허윅(트럼본), 로드니 그린(드럼) 등 초특급 재즈 뮤지션이 세션으로 참여했다. 이후 그녀는 2집 ‘The Blues’, 3집 ‘Yesterday’를 냈고 한국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 자리를 굳히게 됐다.
또 KBS 드라마 ‘경성스캔들’ ‘태양인 이제마’, MBC 드라마 ‘엄마야 누나야’ 등의 O.S.T에 참여했고 뮤지컬 ‘하드록카페’에 킴 역으로 출연도 했다. “뮤지컬 배우 서범석, 개그맨 정준하씨와 우연히 식사를 한 것이 계기가 됐고 서울뮤지컬컴퍼니와 인연이 닿았어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뮤지컬 무대에 서고 나니 새로운 에너지가 얻어졌어요. 공연할 때 손이나 몸의 움직임도 자연스러워졌고요.”
웅산은 음악적 내공을 후배들에게도 전수하고 있다. 현재 경희대 포스트모던과와 수원예대 실용음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00년 김천예고에서 처음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굉장히 큰 보람을 느껴요. 제가 처음 재즈를 시작했을 때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거든요. 제 제자 중에서도 벌써 가수가 많이 나왔어요. 리쌍의 알리(조용진), 솔플라워(민하나), 베이지(황진선) 등이죠. 영화 ‘식객’에 나온 이하나는 연기자가 됐고요.”
지난 1월 초부터는 케이블방송 tvN의 시사 프로그램 ‘리얼스토리 묘’를 진행하고 있다. ‘클래지콰이’ 호란의 바통을 이어 받은 것이다. “우연히 찾아온 음악이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듯이 이번 기회가 또 나를 어떻게 바꿀지 궁금했어요. 저는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고 싶거든요. 다음에는 음악 프로그램도 진행해 보고 싶어요.”
웅산이 음악 이외에 좋아하는 것은 등산과 술이다. “지금은 남한산성 밑에 사는데 북한산을 정말 많이 올랐어요. 또 술은 무척 좋아하는데 목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제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한번 마시면 새벽까지 가죠.”
요즘도 공연 준비 때문에 금주 기간이라고 한다. 지난 2월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발렌타인데이 콘서트’는 2회 모두 매진됐고, 3월 20일은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한다. “큰 곳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에요. 그만큼 재즈가 사랑 받는 것 같아서요. 1부에서 스탠더드 넘버를 부르고 2부에서는 제 색깔이 잘 드러나는 노래를 들려드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