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공과대학의 A교수는 지난 3일 대학본부로부터 공문 한 장을 받았다. "지난 학기부터 '생리 결석계제도'가 학칙으로 자리잡았으니 여학생들이 제출하는 생리 결석계를 최대한 인정해주고 학생들에게도 이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연세대는 이번 학기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수 강의 평가에 '교수가 생리 결석계를 인정해주었는가'를 묻는 설문 문항도 포함할 계획이다. A교수는 "생리 결석 인정은 '여학생 건강 보호'를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증명할 방법도 없고 악용될 소지도 크다"면서 "본부 지침과 관계없이 앞으로도 생리 결석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학생들이 생리기간 중 결석을 해도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생리 공결(公缺)제'. 국내 일부 대학들이 1~2년 전부터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 대학에서는 출결과 학점이 제도적으로 관련이 없기 때문에 그런 유례를 찾기 힘들다. 여학생들은 이 제도를 적극 지지하면서 사용률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도입 대학도 확산되는 추세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제도

국내에서 '생리 공결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대학은 중앙대로 알려져 있다. 2006년 2학기부터 시범 운영했다. 당시 이 제도 시행 방안을 기안한 이 대학 학사운영팀 김재근 과장은 "총여학생회의 강력한 건의를 받아들여 도입했다"고 말했다.

연세대와 서강대, 경희대, 충북 서원대, 고려대 등 다른 대학들도 "여성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총여학생회의 요구에 따라 속속 이 제도를 도입했다.

역설적이게도 여대 중에서 이 제도를 도입한 학교는 드물다. 이화여대와 숙명여대, 덕성여대 등 서울 소재 주요 여대들이 대부분 '생리 결석'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화여대는 "학생뿐 아니라 교수의 50% 이상, 직원의 90% 이상이 여성이라 생리 공결제를 시행할 경우 학교 업무 전체가 마비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러스트= 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서울대 이정재 학생처장은 "생리 공결제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수업을 빠진 학생들을 위해 교수가 보충수업을 해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도 이를 도입한 대학은 찾기 힘들다. 고대 양성평등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호주·일본의 대학들은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연세대 언더우드 국제대학 존 프랭클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와 스미스여대에서도 강의했는데 생리를 이유로 결석했다고 출석한 것으로 인정해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여학생들의 생리 공결제 이용률은 급증하고 있다. 연세대는 도입 첫 학기인 2007년 1학기 전체 여학생 중 14.2%가 이용했으나 2학기에는 24.4%로 증가했다. 서강대도 이용률이 첫 학기 6%에서 두 번째 학기에는 42%로 급증했다.

하지만 아직은 사용하지 않는 여학생이 더 많다. 연세대 김정화(여·경영 4)씨는 "직장인들은 생리휴가를 사용하면 추가 수당까지 받지만 비싼 등록금 내고 공부하는 학생들은 생리 결석을 쓸수록 손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여자는 결석해도 A, 남자는 F"

'생리 공결제'를 도입하는 대학이 늘면서 남녀 대학생 사이의 갈등도 확산되고 있다.

취업난 때문에 '학점'에 매우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 강의에 5회 이상 결석하면 자동으로 F학점 처리되는 'FA제도'를 운영하는 서강대의 경우 갈등 양상이 뚜렷하다. 남학생이 결석을 하면 바로 학점에 불이익을 받지만 여학생은 5일까지 결석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정모(21)씨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여학생은 5번 빠져도 A, 우리는 5번 빠지면 F'라는 말까지 나올 만큼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갈등이 커지자 서강대측은 이번 학기부터 생리 결석이 인정되는 날짜를 5일에서 3일로 줄였다.

연세대 법학과 강모(26)씨는 "서강대는 생리 결석을 5일에서 3일로 줄였고, 연세대는 시험기간 중에는 인정하지 않는다"며 "여학생이 한 학기에 생리를 석 달만 하거나 시험기간에는 누구도 생리를 하지 않아야 가능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세대 사회학과 조한혜정 교수는 "생리 공결제는 정말 생리통이 심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며 "그런 약자를 배려한다는 점에서 현재 적절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