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중반 미국 미네소타대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신분을 속이고 종말론 집단에 끼어들었다. 지구가 대홍수로 멸망하고 외계 신(神)을 믿는 사람만 구원 받는다고 믿는 집단이었다. 예고된 멸망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교주는 "신이 신자들 열성에 감동해 세상을 구원하기로 했다"고 했다. 신자들은 예언이 빗나간 데 실망하거나 분노하기는커녕 열광하며 축제를 벌였다.

▶페스팅거는 상식과 어긋나는 종말론자들 심리를 설명하기 위해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을 만들었다. 인간은 자신이 믿는 것과 실제 일어난 일이 다를 때 '부(不)조화'의 좌절을 겪는다. 그 고통을 줄이고 극복하려면 믿음과 현실, 둘 중 하나를 바꿔야 하지만 현실을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에 결국 자기 믿음에 맞춰 합리화한다는 이론이다.

▶페스팅거는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필름을 상자에 담아 내다버리는 지루한 일을 되풀이해 시킨 뒤 1달러씩 주고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이 재미있다"고 거짓말을 하라고 했다. 한참 뒤 학생들에게 "일이 어떻더냐"고 묻자 상당수가 "정말 재미있었다"고 답했다. 이들은 겨우 1달러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는 게 싫어서 그 일이 재미있었다고 스스로 믿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제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수뢰사건 공판에서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하면서 '인지 부조화' 이론을 말했다. 전씨가 부하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사실을 끝내 부인하는 것을 두고 "그런 불명예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과거 기억을 스스로 왜곡하고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진술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씨는 100장이 넘는 탄원서를 냈고 법정에서 눈물까지 흘렸다.

▶인지 부조화 이론은 현대 마케팅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기업은 자기 상품을 산 구매자가 구입 결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하는 정보를 계속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지 부조화 이론은 불합리해 보이는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새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그것이 한 고위공직자가 잘못을 덮기 위한 방편으로 작동되는 것을 보기란 씁쓸한 일이다. "우리는 위선을 정당화하기 위해 놀라운 정신활동을 한다." 페스팅거의 말이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