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위 공직자가 거치는 검증과정을 '당밀(糖蜜) 속 마라톤'이라고 한다. 끈적끈적한 시럽에 빠진 것 같은 곤욕을 끈질기게 버텨내야 한다는 말이다. 사생활도 여지없이 까발려진다. '공직자 후보 생존 가이드'라는 책이 나올 정도다. 저자 폴 라이트 뉴욕대 교수에게 한 고위직 후보자가 물어왔다. "19세 때 개인수표를 잘못 썼다 체포된 일도 털어놓아야 하느냐." 라이트는 "그게 두려우면 공직을 포기하라"고 했다.
▶정권이 바뀌면 상원 청문 절차를 거쳐야 하는 공직자가 600명에 이른다. 장관, 차관보급 이상 정무직, 연방검사, 대사, 장성들이다. 정작 청문회까지 가는 길이 더 모진 가시밭이다. 정권인수팀은 후보자들에게 설문지부터 보낸다. 21세 이후 수입원, 지난 10년 가입 단체, 자녀 양육비 지급 여부, 정신과 상담 경력…. 230여개 문항의 마지막은 '당신이 후보로 지명되면 누가 비난할 것 같으냐'다.
▶인수팀 인사책임자는 후보자 면담에서도 피의자 심문하듯 한다. 낙태에 반대하는 공화당 정권이라면 여성 후보에게 "낙태 경험이 있느냐"고까지 묻는다. 마지막엔 "옷장에 숨겨둔 해골을 꺼내놓으라"고 한다. 정말 비밀스러운 치부까지 드러내라는 얘기다. 뭔가 숨기는 것을 우리가 찾아낼 경우 당신은 '아웃'이라는 경고이자, 그 치부가 청문회 통과에 걸림돌이 될지 여부를 함께 논의해 보자는 뜻이다.
▶자체 검증이 끝나면 당선자는 후보자 서류를 법에 따라 FBI에 넘긴다. FBI의 검증 전담조직 ASD는 요원을 대규모로 투입해 평균 35일, 길게는 석 달 동안 후보자의 모든 것을 조사한다. 고향 친구, 이웃도 만나 나쁜 평판과 소문까지 여과없이 수집해 상원에 보고한다. 후보자는 재산 신고, 정부 윤리위 심사까지를 마치고서야 청문회에 선다. 백악관 최고참 기자 헬런 토머스는 "자식 출세시키려면 다섯 살 때부터 관리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검증이 워낙 길고 혹독하다 보니 후보자가 스스로 포기하는 예도 흔하다. 덕분에 1989년 이후 상원 인준투표에서 탈락한 장관은 한 명도 없다. 의회 본회의장에 정부 관계자 출입을 금지할 만큼 권력분립이 엄한 미국이지만 인사청문회는 예외다. 당선자나 백악관측은 공직 후보군(群) 선정 초기단계부터 수시로 상원 지도자들에게 명단을 통보해 반응을 떠보는 게 관행이다. 의회가 대표하는 민심에 귀 기울이고 그에 맞춰 후보를 고르겠다는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