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로 무너진 국보 제1호 숭례문(崇禮門·남대문)이 조금씩 '복구'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14일로 화재 발생 5일째를 맞은 숭례문 현장에서 '잔해를 서둘러 내다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한 문화재청은 훼손 부재들의 현장 방출을 일단 차단했다. 문화재위원회가 화재 이틀 만인 지난 12일 '국보 유지'를 결정한 뒤로 '원형 복원'이라는 큰 원칙과 방향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복원과정에서 숭례문은 화재 직전까지의 모습과는 얼마나 많이 달라질 것인가? 또 조선시대 '도성 정문'으로서의 위상과 모습은 얼마나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전체 목재 30% 이상 살릴 수 있어"

이번에 훼손된 숭례문 누각은 크게 기와와 목부재(木部材)로 구성됐다. 이 중 기와는 대부분 화재 당시 떨어져 깨져 버렸기 때문에 전량 새 부재로 교체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목부재는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며, 특히 1층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문화재청은 "1층의 목부재는 70~80% 정도까지 살릴 수 있고, 숭례문 전체로 볼 때 적어도 30%의 목부재는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훨씬 희망적인 관측도 있다. 13일 현장을 둘러본 김홍식 문화재위원(건축사)은 "목부재 60%까지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타버린 것 같은 처참한 모습이지만, 나무가 불탄 것은 벌레 먹은 것과는 달라서 그중에는 거의 손상을 입지 않은 것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급한 복원 작업을 우려하는 학계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사연구회·역사학회·한국고대사학회 등 전국의 16개 한국사 관련 학회는 14일 성명을 내고 "숭례문을 졸속으로 복원해서는 안 된다. 학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공개적인 토론의 장을 통한 국민의 합의 아래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벽 복원하고 지표 1.6m 낮춘다

지난 2006년 마련됐던 숭례문의 '양쪽 성벽 복원' 계획도 이번 화재를 계기로 다시 힘을 얻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2일 이 문제를 논의하고, 빠른 시일 내에 실무자 회의를 갖기로 합의했다. 숭례문 양쪽 성벽은 1899년(광무 3년) 전차가 개통되면서 일부 훼손된 뒤 1907년(융희 1년) 또다시 크게 헐렸다. 당시 방한했던 일본 왕세자가 '머리를 숙이고 문을 지나갈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이로부터 숭례문은 양쪽에 날개처럼 성벽을 지녔던 당당한 모습을 잃어버리고 외로운 섬처럼 고립됐다. 이번 성벽 복원 계획은 현재 남은 경사면 형태(삼각형 모양)의 성벽을 당초의 성벽 형태(사각형 모양)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12일 "남산 쪽으로는 50~70m 정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숭례문 준공 당시보다 1.5~1.6m 올라온 현재의 지표(地表)도 원상대로 깎을 예정이다. 숭례문이 석축보다 누각 부분이 큰 가분수처럼 보였던 것도 지표가 올라와 석축이 가려졌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을 복구할 경우 숭례문의 전체 높이는 약 7.9m로 높아진다.

◆"현판은 3개월 내 복원"

가까스로 화마를 피했지만 만신창이가 됐던 숭례문 현판(편액·扁額)은 3개월 내로 원형 복구가 가능할 전망이다. 14일 현재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보존과학실이 보관하고 있는 현판은 액자에 해당하는 주변 장식인 낙양각(落陽刻)이 부서지는 등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본판은 길이 5~10㎝ 정도의 파편 6개를 제외하면 원형이 그대로 보존됐고, 화재 현장에 떨어져 나간 조각들을 대부분 찾았기 때문에 전체 모습의 복구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재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95% 이상의 현판 부재들이 확보됐다"고 말했다. 한편 화재 당시 뿌린 물 때문에 고드름투성이가 됐던 홍예문의 천장화는 다행히 큰 피해를 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