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연예인과 재벌 조카딸 등의 누드 사진 유출 파문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지난 달말 처음 발생한 연예인 누드 사진 유출은 이제 재벌가 조카딸의 누드 사진까지 등장하는 등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인터넷에 떠도는 '에디스 찬의 여자들 계보도'.
◆ 판도라의 상자인 에디슨 찬의 PC

사건이 처음 시작된 것은 지난달 27일. 홍콩의 유명 배우이자 가수인 에디슨 찬(陳冠希·28)이 인기 여가수인 ‘트윈스’ 멤버 질리안 청(鐘欣桐)과 침대 위에서 찍은 누드 사진이 인터넷에 나돌기 시작했다. 다음날에는 국내에도 ‘파이란’이라는 영화로 유명한 장백지(장바이즈·張柏芝)와 함께 찍은 성행위 장면을 담은 사진이 ‘홍콩여자’라는 제목으로 게시판으로 올라왔다. 이날 오후 이 글은 삭제됐으나 이미 네티즌들 사이에 퍼지고 난 뒤였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에서 내려 받은 사진을 이메일로 전송했고 이 사진들은 급기야 미국과 대만에까지 퍼졌다.

이에 장바이즈는 지난달 29일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은 내가 아닌 닮은 사람”이란 공식 성명을 발표했고 소속 연예사 역시 “악질적인 합성 사진”이라며 강력한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그러나 중화권 네티즌들은 “사진 속 인물의 오른쪽 어깨와 왼쪽 팔의 점이 장바이즈의 평소 사진과 일치한다”며 합성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건의 당사자인 에디슨 찬은 이날 오전 미국으로 도피성 출국을 했다.

바로 다음날인 30일 수사에 착수한 홍콩 경찰은 31일 1차 수사결과를 발표, 네티즌들의 손을 들어줬다. 홍콩경찰청 ‘상업죄안조사과 컴퓨터검증소조’가 ‘외적총감찰전문가소조’ 등과 함께 조사를 벌인 결과 “이들 사진이 조작된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며 “제3자의 손에 의해 가공된 것임을 확인하지 못했으며 휴대폰으로 촬영된 것임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

같은 날 오후 경찰은 사진을 처음 다른 사람에게 유출시킨 29세의 컴퓨터 수리공을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 용의자가 2006년 찬이 맡긴 노트북을 수리하던 중 노트북에 보관돼 있던 수백 장의 누드 및 음란 사진을 몰래 내려 받았고 이를 지인들에게 유포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또 이번 사건은 동남아 한 국가의 서버를 통해 유포됐다"며 "이번 사건은 배후에 조직배가 있는 것으로 의도적으로 사진을 유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2월2일 문제의 사진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남자 4명과 여성 2명 등 6명의 용의자를 추가로 검거했다. 이중 34세의 한 컴퓨터 전문가가 1300여장의 음란 사진을 자신의 컴퓨터에 보관하고 있었다. 여기엔 찬과 여성 연예인 6명이 각각 찍은 누드 사진도 포함돼 있었다.

총 7명의 용의자 검거로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7일과 9일 두 차례 대량의 사진이 유출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7일 질리언 청과 장바이즈의 추가 사진은 물론, 천쓰후이(陳思慧), 량위언(梁雨恩) 등의 누드 사진이 포함된 200여장의 사진이 유출됐다.

9일 오전엔 한 네티즌이 221장의 새로운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이날 공개된 사진엔 찬이 4년 전부터 사귀어온 홍콩 엠퍼러(英皇)그룹 회장의 조카딸인 빈시 영(楊永晴)의 누드 사진이 포함돼 있었다. 빈시 영은 당시 사진을 찍었을 때 16세에 불과했다.

이로써 지난달 27일 이후 총 465장의 각기 다른 누드 및 음란 사진이 공개됐다. 이에 따라 여성 피해자는 7명으로 늘어났다.

파문이 진정되기는커녕 점점 확산되면서 새로운 가설도 제기되고 있다. 마피아 음모설과 흥분제 복용설이 그것. 마피아 음모설은 에디스 찬의 아버지가 연루된 의혹이다. 중국의 대부호로 알려진 아버지가 마피아의 자금을 갚지 않자 이에 대한 경고로 사진을 고의적으로 유출됐다는 주장이다. 또 사진 속 여배우들이 대부분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감안, 에디스 찬이 흥분제를 투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누드 유출 사건의 피해자들은 누구

-에디슨 찬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에디슨 찬은 영화 ‘무간도’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캐나다 출신인 그는 4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어릴 적부터 그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고 장국영과, 성룡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 놓은 에디슨 찬은 여명, 장바이즈와 함께 CF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2003년 ‘트윈 이펙트’ 제작발표회 때 성룡이 ‘나의 히든카드’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홍콩 연예가 최고의 플레이보이다. 2006년 잡지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섹스'라고 공언했다. 2002년 대만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는 “첫 경험은 13세이고 상대는 연상녀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와 교제했던 스타는 다니엘 헤니의 옛 연인으로 알려진 매기큐, 가수 보보 찬, 조이 융 등 10여명으로 중화권에서는 톱스타급이다.

사건이 시작될 즈음인 1월29일 미국으로 출국했던 그는 4일 변호사를 통해 사과의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흰색 셔츠를 입고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한 찬은 1분이 조금 넘는 동영상에서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번 파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수사에 협조할 것이다”, “더 이상 피해가 없도록 사진을 갖고 계신 분들은 모두 삭제를 부탁한다” 등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중국의 네티즌들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배려는 있었으나 중국 국민들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며 “오히려 누드사진 유출 파문에 대한 책임을 동영상을 유포시킨 일부 몰지각한 네티즌에게 돌린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기자 회견한지 일주일도 안돼 두 차례 대량의 사진이 유출됐다.

그는 최근 신작 영화 ‘점프’에 출연했으나 제작사인 콜롬비아 픽쳐스는 찬의 출연 장면을 모두 삭제하고 재촬영을 위해 개봉시기를 당초 공개 시기인 5월 1일에서 반년 이상 연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유출된 사진들 대부분은 모두 찬의 집에서 찍힌 것이다. 장소는 침실 이외에 거실과 욕실 등 다양했다.

-질리안 청

158장의 사진이 공개된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다. 1981년생인 그는 2002년 홍콩 팝그룹 트윈스의 멤버로 가요계에 데뷔해 인기를 얻고 있다. 2002년 ‘괴수학원’으로 영화배우로도 데뷔했다.

그는 11일 오후 2시(현지 시각) 홍콩에서 열린 트윈스의 팬미팅에 참석, 피해자 중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나타났다. “이전의 내가 어리석었다”며 입을 연 질리안 청은 “이번 사건으로 나와 내 주변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이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내 인생을 보다 적극적으로 열심히 살아갈 것이고 일도 더 열심히 할 것이다. 내게 관심을 보여주고 날 떠나지 않은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작년 10월 아디다스와 맺은 홍콩에이전트 및 모델 계약이 파기될 위기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디즈니랜드가 홍보 차원에서 그와 찍었던 광고도 인터넷에서 모두 사라졌으며 두 차례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바이즈

영화 ‘파이란’ 출연을 통해 국내에 알려진 장바이즈는 장동건과 출연한 ‘무극’을 통해 중화권 스타 중 한국에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한 배우다. 1998년 호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홍콩으로 돌아와 레몬 음료광고에 출연하면서 수많은 영화사와 광고회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그의 첫 출연작은 주성치의 코미디 ‘희극지왕’. 99년 홍콩 겨울방학 개봉작 중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영화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99년 영화 ‘성원’에 간호사 역할로 출연, ‘제2의 장만옥’으로 불리기도 한다.

2006년 인기 배우 니컬러스 체(謝霆鋒)와 결혼, 작년 아이를 낳았으나 이번 사건으로 이혼 위기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빈시 영(楊永晴·20)

9일 추가 유출된 사진에서 새로 추가된 피해자다. 그는 연예인이 아니라 영화사, 연예기획사, 부동산, 호텔을 운영하는 홍콩 엠퍼러(英皇) 그룹 회장의 조카딸이다. 에디스 찬이 4년 전부터 사귀어온 현재 여자친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누출된 빈시 영의 사진은 경찰 조사결과 미성년자인 16세 때에 찍은 것으로 밝혀져 큰 논란을 낳았다.

◆사건으로 촉발된 논란들

이번 사건을 둘러싼 반응은 크게 세 가지다. 경찰의 사진 유출 수사가 인터넷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과 문제의 사진을 찍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 에디슨 찬을 즉각 구속해야 한다는 주장, 사생활을 퍼뜨린 네티즌과 언론이 문제라는 주장 등이 있다.

지난 10일 홍콩 시내에 모인 네티즌 400여 명은 경찰 수사에 항의하는 가두시위를 벌이며 용의자 청익틴(鍾亦天)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다. 이들은 “언론이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사진을 게재한다면 네티즌도 네티즌의 알 권리를 위해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두 행진을 조직한 마이클 추이(徐傑生)는 "인터넷상에는 수많은 음란사진이 떠돌아다니지만 경찰은 이에 대해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며 "단지 배우이고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사진유포를 처벌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말했다.

찬을 즉각 구속하라는 목소리도 높다. 한 친구 교제 사이트엔 경찰의 찬 체포를 요구하는 팀이 구성됐다. 벌써 회원이 1700명을 넘어섰다. 홍콩의 한 언론사는 그를 ‘새로운 세기의 천박한 남자’라는 의미로 ‘신세기천남(新世紀賤男)’으로 부르며 그의 도덕성을 질타했다. 그러나 경찰은 찬이 피해자들의 동의 하에 사진을 찍었다면 처벌할 근거가 없으며 인터넷에 유포한 사람들만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디스커스 닷 컴(discuss.com.hk)’, ‘유완츠(uwants.com)’, ‘홍콩골든(hkgolden.com)’ 같은 사이트에는 연일 여자 연예인들을 격려하거나 경찰의 엄정 대응을 요구하는 수천 개의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홍콩 인터넷협회의 찰스 목나이퀑 회장은 10일 성명을 통해 “인터넷 상의 음란물 소지와 유포를 강력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