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빠마랑 고데 하면 이 아지매 따를 사람 없지. 한 번 맛들이면 딴 데 못 가요. 시덕시덕(척척) 금시도 말지만 이쁘고 또 오래가고…."

미용실을 찾은 70대 할머니의 칭찬이 늘어졌다. 세월 따라 푸석해진 자신의 백발을 '탱탱뽀글'하게 말고 있는 서울 옥인동 '유정미용실' 터줏대감인 미용사 조유정(59)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7평짜리 미용실에서만 38년째이니 효자동, 청운동 일대까지 모르는 사람 드물다. 필부(匹婦)들뿐 아니다. 청와대가 목전이어서일까, 인근에 부잣집이 많아서일까.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변중석 여사가 생전 단골이었고, 이명박 당선자 부인인 김윤옥씨가 효자동 살던 90년대 후반, 간혹 들러 고데를 말고 갔다. 요즘엔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 최영희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 등 관가의 여성들이 이 집 단골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북한 가기 전 이 미용실에 들러 '마무리'를 한단다.

"솜씨는요, 무슨…. 명박이 아저씨 늘 강조하는 실용, 실용파마를 잘 하니까 주부님들이 좋아하는 거지. 삼청각 없어지기 전엔 거기 '언니'들까지 머리 말러 온다고 득시글했는데, 요즘엔 놀멘놀멘 해요. 이 가게는 청와대 앞에 있는 내 놀이터라우."

“미용술은 과학이 아니라 감각이기 때문에 의술만큼 어렵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조유정씨. 그런 까닭에 조씨는 쇠 고데기(조씨 앞에 놓인 기구)를 30년 넘도록 고집스럽게 불에 달궈 쓰고 있다.

조씨는 전북 전주가 고향. '미용기술 배워 부자 돼 볼란다' 하고 스무 살도 되기 전 상경해 광화문, 한남동 외인주택 부근을 떠돌다가 옥인동에 정착했다. 파마도 파마지만 이 집에 중년 단골이 많은 이유는 조씨의 주특기인 '고데' 덕분이다. 그는 아직도 불에 달궈서 쓰는 집게형 쇠 고데기를 고집한다.

"파마는 약이 좌우하지만 고데는 손재주가 좌우해요. 그 중에서도 쇠 집게로 볼륨을 확실하게 잡아줘야 얼굴이 야무져 보이죠. 전기 드라이기와 달리 쇠 고데기는 섬세한 웨이브와 경쾌한 탄력을 줄 수 있어 분위기를 수천 가지로 변화시킬 수 있어요. 젊은 미용사들은 집게로 머리칼 태우기나 하지 그걸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으니 안 하는 거예요."그가 들려주는 단골 이야기도 재미있다. "변중석 여사는 현대 직원들 된장, 고추장 담가 먹인다고 매일매일 바쁘셨죠. 그러니 잘 풀리지 않는 막파마를 즐겨했어요. 얼굴에 귀염이 꽉 찬 건 며느리인 현정은 회장이 빼닮았지요. 김윤옥 여사는 숱이 많은 편이 아니라 '후까시'(부풀림)를 넣어 우아한 분위기로 해드렸어요. 바빠서 10분 만에 뚝딱 양장머리 하고 가는 장하진 장관은 지난번 덴마크 여왕 오셨을 때 한복차림에 맞게 올림머리 해드렸더니 참 곱데요."

10년 전만 해도 명절날 미용실은 고데 하러 오는 여성들로 대목을 이뤘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단다. "집집이 드라이기 한 대씩 갖고 있으니 혼자서들 하나부지. 맵시 내는 비결요? 한복차림 새댁은 올림머리가 최고죠. 신비하잖아요? 중년들은 참한 듯 은근슬쩍 화려하게 고데기로 말면 되고. 근데 아무리 유행이고, 얼굴에 자신 있어도 머리를 너무 짧게 자르진 마요. 사내 같아 상스러워 보여. 머리엔 자고로 낭만이 있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