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선 '정치(政治)'를 '나라를 다스리는 일, 혹은 권력을 획득·유지하고 행사하기 위한 투쟁이나 조정에 대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이 일을 가업(家業)으로 삼은 집안이 늘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정계에 입문하는 '2세 정치인'이 나오는가 하면, '스타 정치인'인 형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가 총선에 도전장을 낸 동생도 있다. 시아버지를 따라 정치인이 된 뒤 재선을 노리는 며느리도 있고, '인생의 룸 메이트'와 나란히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펼치다가 총선에 재도전하는 부부도 있다. 원래 정치는 일종의 '패밀리 비즈니스'다. 선거를 한 번 치르면 배우자와 자녀는 물론 친척들까지 힘을 모아야 한다. 가족은 리더십 배양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고, 좋은 품성과 안정감 있는 정서도 1차적으로 가정에서 시작된다. 과거 주인공이 한 명뿐이었다면 이제 주인공이 두 명, 세 명으로 늘어난 '패밀리 비즈니스'가 된 셈이다. 한 집안에서 금배지가 몇 개씩 나오는 것에 대해선 '가문의 영광' 혹은 '세습 정치'라는 식으로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화려한 정치 경력을 가진 선친의 후광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요, 넘어야할 산"이라고들 한다.
오는 4월 9일 있을 18대 총선에 도전하는 이런 '가족 정치인'들의 면면과 사연을 취재했다.
김태호 전 의원과 이혜훈 의원
선거참모 맡아 토론하며 정치 배워
“끔찍하게 며느리 사랑” 소문 자자
“니가 가가? 그렇지 않아도 보고 싶었는데….” 지난 17대 때 서울 서초갑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이혜훈(44) 의원에게 김용갑 의원 등 연배 높은 정치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2002년 작고한 이 의원의 시아버지인 김태호 전 한나라당 의원과 동 시대에 정치를 하던 분들이었다.
"자네 시아버지가 '정치는 우리 며느리가 해야하는데' '내 피를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가 이어받았다'면서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김태호 전 의원은 내무부 관료 출신으로 청와대 수석 비서관을 지낸 4선 의원이었다. 이혜훈 의원은 지난 총선을 치를 때 "누구의 며느리가 아니라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정치인이 되겠다"며 "국제 경쟁력을 갖춘 경제통인 저 이혜훈을 뽑아달라"고 했다. 이후에도 그는 "시아버지의 후광은 가족으로서 짊어져야할 십자가였고, 정치신인인 내겐 특히 더 그랬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시아버지를 통해 정치를 처음 접한 건 맞다. “1996년 선거 때엔 사무실에 가서 전화 받는 일부터 했어요. 목욕탕 가서 때를 미는 일도 해봤어요.” 2000년 선거 때부턴 방송 원고도 쓰고, 선거 전략을 짜는 일에도 참여했다. 김태호 전 의원은 정무위, 기획예산처, 공정거래위 등 경제 분야의 국회 대정부질의가 있을 땐 며느리를 불러 상의했다고 한다.
“아버님은 주말이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십수권씩 사셨어요. 또 ‘고령화’ ‘미래 쇼크’ 같은 제 전공 관련 책을 사서 줄까지 쳐서 주셨어요.” 이 의원은 1996년 미국에서 귀국한 뒤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TV 뉴스를 같이 보면서 흘러간 정치 뒷얘기를 듣고, 정치 사안을 토론하는 건 시아버지와 며느리였다.
이 의원의 남편인 김영세 연세대 교수는 천상 학자 스타일이다. “저는 정부 연구소에 다닐 때에도 아버님 선거를 치르면 휴가를 내고 도왔는데, 남편은 안 그랬어요.” 하지만 ‘정치인의 아들’에서 ‘정치인의 남편’으로 신분이 바뀐 뒤로 조금 달라졌다. 김영세 교수는 “솔직히 아버지 선거를 도울 땐 대충했는데, 아내가 한다니까 내 일이나 마찬가지더라”라고 했다. 지난 선거 때부터 ‘주부 남편’ 역할을 하며 세 아들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시아버지로부터 며느리가 배운 정치는 어떤 것일까. 지난해 이 의원이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선대위 대변인을 맡았을 때였다. 주변에선 “총대 메고 나서지 말아라” “뒤편에 있으면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듯 있는 것, 그게 정치”라고들 했다.
“너무 한쪽을 분명히 지지하는 게 결코 정치에서 정답은 아니라는 말씀들이었죠. 하지만 아버님은 늘 제게 인생에서나 정치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로 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지금도 아버님 말씀이 정말 맞다고 생각합니다.”
최규성 의원과 이경숙 의원
이번 총선은 둘 다 지역구 출마
선거 전략은 “각자 알아서 살아남기”
지난해 가을 국회 여성가족위 위원들이 특전사 군 부대를 방문했다. 특전사 부대에선 “부대원의 어머니가 방문단 중에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회계사 출신인 경리병 최현민씨였다. 최씨는 군 부대를 찾은 어머니를 만났다. 당시 열린우리당 이경숙 의원이었다.
이튿날 최씨의 상사가 물었다. “어머니가 국회의원이었다고? 그러면 아버지 직업은 무엇이신가?” “네, 아버지도 국회의원입니다.” 최씨의 아버지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최규성 의원이다.
과거에도 박철언·현경자 의원처럼 부부 국회의원은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처럼 현직에서 같이 의정활동을 한 적은 없었다. 지난 17대 때 최규성 의원은 전북 김제·완주 선거구에서 당선됐고 이경숙 의원은 비례대표 5번으로 당선됐다.
이번 18대 총선에선 두 사람 모두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이 의원은 서울 영등포을에서 출마할 뜻을 갖고 있다. 남들은 가족이 총선을 치른다고 하면 사돈의 팔촌까지 돕는다는데, 이들 부부는 ‘각자 살아남기’가 모토다. 이경숙 의원은 “지난 총선 때, 제가 비례대표 의원이라 하루 정도만 남편 지역구에 가서 돕고 다른 사람들 선거운동에 따라다녔다”고 했다.
부부 사이인 이들은 국회의원 재산 신고 내역서, 집 주소, 가족 구성원도 같다. 하지만 국회 내의 법안 처리에서까지 일심동체인 건 아니다. 2004년 6월 ‘이라크 파병 동의안’으로 국회가 시끄러울 때였다. 무역업을 했던 최 의원은 이에 찬성을 한 반면, 부인인 이 의원은 ‘이라크 추가파병 재검토 결의’에 서명하는 등 ‘파병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 의원은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를 맡으며 25세 조기 정년제 철폐, 남녀고용 평등법 개정, 성매매 방지법 제정, 호주제 폐지 등 여성계의 과제를 앞장서서 이끌어왔다. 최 의원도 서울대 법대 시절, 3선 개헌 반대로 학생 운동에 앞장섰던 ‘투사’ 출신이다.
이 의원은 “걸어온 길에 따라 조금씩 입장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둘 다 같은 뜻을 가질 때가 훨씬 많다”고 했다. 2006년 9월 열린우리당 의원 14명이 FTA 협상과 관련해 사상 초유의 ‘헌재 소송’을 내기로 했을 때, 이들 부부는 함께 포함돼 있었다.
두 사람은 26년 전 부부가 동시에 입장하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현재 생활비는 최 의원이 세비 중 일부를 이 의원에게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의원은 이 의원에게 후원금 350만원을 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저녁 식사도 따로 하고, 밤이 돼서야 집에서 얼굴을 마주칠 뿐이다. 지난 4년간 같이 여행을 간 것도 딱 한 번뿐이라고 한다.
이 의원은 “부부 국회의원이라 힘들긴 하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봉사직이라고 여기면 어려울 게 없다”며 “각자 목표한 길을 걸으며, 격려해줄 뿐”이라고 했다.
함승희 전 의원과 함범희 교수
지역구(속초·고성·양양) 놓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강원 속초·고성·양양 지역에선 하마터면 형제간의 혈투(血鬪)가 벌어질 뻔했다. 주인공은 변호사인 함승희(57) 전 의원과 그의 동생 함범희(51) 한국항공대 교수다. 함승희 전 의원은 16대 때 서울 노원갑에서 새천년민주당 의원을 지냈고, 17대 때 같은 지역에 나왔다가 낙선했다. 그는 최근 고향인 강원 속초·양양 지역 출마를 고민하다가 서울 노원갑 출마로 마음을 바꿨다. 지난 총선 때 이곳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한 동생(함범희 교수)에게 양보한 것이다.
2004년 당시 총선을 며칠 앞둔 상황에서 이 지역의 열린우리당 후보가 선거법 위반으로 도중 하차했다. 함 교수를 향한 러브콜이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쏟아졌지만 그는 거절했다. 당시 “형이 (열린우리당으로) 안 가는데 나도 안 간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함교수는 “국회의원 배지에만 욕심이 있었다면 그때 갔었을 것” 이라고 했다.
함승희 전 의원은 “고향인 강원 지역 출마를 생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탄핵 열풍으로 서울 노원갑에서 낙선한 것도 명예회복하고, 동생에게 길을 열어주는 게 도리라고 여겼다”고 했다.
동생의 얘기는 조금 달랐다. 함 교수는 “형님이 이 지역에서 출마하시면 저는 안 나가겠다는 입장”이었다고 했다. 총선 출마지역을 놓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가 따로 없다.
함승희·함범희 형제의 선친은 강원도 양양에서 군의회 의장을 지낸 함상순씨다. “유전인자가 아버지를 닮았겠지요. 성격도 외향적이고, 남의 일에 관심도 많고, 의협심도 강한 게 집안 내력입니다.”(함범희 교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형제는 서로 어떻게 도울까. 함 교수는 “그저 전화통화나 하고 말로만 돕는다”며 “그래도 지역에서 아버지나 형님을 아시던 분들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한국항공대 경영학 박사 출신으로 중국 베이징대에서 연구 활동을 해온 함범희 교수의 전공은 동북아 물류다. 형제는 둘 다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으로 출마할 계획이다.
김두관 전 장관과 김두수 동북아비전연구소장
형은 고향인 남해·하동 재도전
동생은 수도권 격전지 고양 일산 乙서 3수
전국 최연소(37세) 기초단체장(경남 남해군 군수) 당선, 행정자치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 보좌관…. 경남 남해·하동 지역에서 재출마하는 김두관 후보의 이력이다. 그에겐 늘 형의 유명세에 가려있던 동생 김두수(45) 동북아비전연구소 소장이 있다. 김 소장은 2000년 민주노동당 후보로, 2004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해 두 번 다 낙마했다.
김두수 소장은 "형 콤플렉스 때문에 지난번 총선 땐 어떤 팸플릿에도 형 이름과 사진을 안 넣었다"며 "그때 제가 너무 순진했던 걸 후회한다"고 했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나란히 고배를 마신 김두관·김두수 형제는 이번 18대에는 두 명 다 경남 남해·하동과 경기 고양 일산을 에서 각각 재도전한다.
인지도야 형이 높지만 사실 형보다 동생이 '혁명 투사'에 가깝다. 김 소장은 용접공, 지게차 기사로 일하며 노동 운동을 해왔고 전국연합에서 재야운동을 하다가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으로 일했다. 두 사람은 농민인 부모님의 6남매 중 다섯째(김두관)·여섯째(김두수)다. 두 사람만 형제 중 유일하게 대학을 다녔다고 한다.
이 밖에도 고(故) 김윤환 전 의원의 동생인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이 경북 구미을에서 재출마한다. 김태환 의원은 16대 총선 때 ‘개혁 공천’의 상징으로 낙천된 형 김윤환 전 의원의 설움을 딛고, 17대 때 형의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새 정부의 국정원 후보로 거론되는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의 동생인 송철호 전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이 울산 남갑에서 출마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형우 전 내무장관과 최제완씨
총선 첫 도전… “아버지의 못다한 꿈 이루겠다”
"최형우 전 장관의 아들, 최제완이라고 합니다."
"혹시, 그 입시부정사건의 주인공 아닙니까."(기자)
"네, 맞습니다. 바로 제가 그 아들입니다."
1994년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은 아들의 경원전문대 입시부정 의혹으로 사퇴했다. 당시 최 사무총장은 고 김동영 의원과 함께 ‘좌동영·우형우’라 불릴 만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다. 하지만 그는 1997년 3월 신한국당 경선을 앞두고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사실상의 정치생활을 접었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뒤 최형우(73)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부산 연제구에서 차남인 제완(37)씨가 한나라당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입시 부정에 연루됐던 그 아들이다. 미국 등지에서 사업을 해오던 최제완씨는 지난해 12월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책을 펴낸 뒤 선거 캠프를 꾸렸다.
지난해 봄 제완씨는 최 전 장관에게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침묵하던 최 전 장관은 아들 손을 잡더니 어깨를 끌어안고 “응, 그래, 그래”라고만 했다. 최씨의 어머니인 원영일 여사는 “금배지를 달고 거들먹거리려거든 아예 나갈 생각도 마라”며 “아버지가 해온 정치에 누가 되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최제완씨는 미국의 아메리칸 인터콘티넨탈대에서 시각홍보를 전공한 뒤 귀국해 군 복무를 마쳤다. 29세부터 10년 가까이 주택 건설과 자원개발 관련 사업을 해왔다. 최씨는 “아버지가 국방위에 계실 때 지역구에 검찰청, 시청, 경찰청을 유치했다”며 “아버지가 쓰러지신 뒤 못다한 일들을 제가 하고 싶다”고 했다.
최씨는 아버지가 초선 의원(8대 신민당)으로 있던 1971년 태어났다.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아버지와 어머니가 유신 정권의 탄압으로 감옥에 들어가 제대로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고열과 폐렴을 앓다가 수술을 두 번이나 받기도 했다.
최씨는 “아버지는 쓰러지시기 전에도 ‘제완아, 네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아버지의 아들이란 걸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왔고 힘들고 괴로울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등에서 사업을 하면서 익힌 글로벌 감각과 경제 감각을 살려 정치를 해보겠다고 한다.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과 노웅래 의원
"아버지는 든든한 배경이자 넘어야 할 산"
대통합민주신당의 노웅래(51) 의원은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유인물을 절대 지나치지 않는다. 아버지(노승환 전 의원) 선거를 돕기 위해 명함을 돌렸던 학생 시절이 생각나서다. "'정치한다고 어린 아들까지 동원했다'며 누가 고함을 쳐서 내쫓았어요. 어린 마음에 많이 속상했지요."
노 의원의 부친은 국회부의장과 마포구청장을 지낸 5선의 노승환(81) 전 의원이다. 민선 동장을 시작으로 서울시의회 의원,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선거에 열두 번 출마해 열두 번 모두 당선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화려한 경력의 아버지 덕분에 노 의원에겐 지금껏 '노승환의 아들'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노 의원은 "아버지 덕분에 남들보다 좋은 조건에서 정치를 시작한 건 부정할 수 없다"며 "저 스스로 평가받기보다는 아버지보다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큰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훌륭한 정치인'이 '다정한 아버지'까지 되기는 어려운가 보다. 노승환 전 의원이 정치한다며 늘 밖으로만 다닌 탓에 봉투를 붙이고 구슬을 꿰어가며 생계를 잇는 가장 역할은 늘 어머니의 몫이었다. 기자로 있던 아들이 정치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말린 사람은 어머니였다고 한다. 법조인이나 성직자를 꿈꿨던 노 의원은 기자의 길에 들어섰고 MBC 노동조합위원장 겸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위원장을 지냈다. 노웅래 의원은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존경하는 인물을 지금껏 '정치인 노승환'으로 꼽는다.
김상현 전 민주당 고문과 김영호씨
"누구의 아들이 아닌, 나만의 정치를 하겠다"
선거를 치러본 사람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도 막상 떨어지고 나니 후유증이 너무 심하더라"고 입을 모은다. 한 집안에서 한 명만 낙선해도 그럴 텐데 부자(父子)가 나란히 낙선하면 어떨까. 지난 17대 때 김상현(73) 전 민주당 상임고문과 아들인 김영호(41)씨는 각각 광주 북갑과 서울 서대문갑 지역에서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김영호씨는 이번에도 서울 서대문갑에 다시 민주당 예비 후보로 등록했다. 그의 홈페이지나 동영상 파일엔 아버지의 이름을 한 자도 찾아볼 수 없다. '김상현의 아들'이란 말은 간 곳 없고 '서대문의 아들' '중국 전문가'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가득 차있다.
김 전 고문의 지역구에선 "김상현 전 고문과 아들 간 사이가 안 좋다" "친아들이 맞는가" 같은 소문이 떠돈 적이 있었다. 김 전 고문이 아들의 지역구는 물론 사무실에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는다고 해서 퍼진 헛소문이라고 한다.
김씨는 "2세 정치인은 지역을 물려받았다고들 하는데 저는 '아버지의 고향'이 아니라 '나의 고향'인 서대문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구태를 되풀이하는 물린 정치, 이제 새로운 인물이 들어가고 진짜 일하는 인물로 바뀌어야 합니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아버지가 정치인이라 과거 정치를 비판하는 게 힘들겠다고요? 아니에요. 개혁인지 구태인지는 나이를 기준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386 세대라고 해도 구태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고요."
중국 베이징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김영호씨는 "국회의원 수백 명 중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중국통이 한 명도 없기에 정치 입문을 결심했다"며 "중국을 잘 아는 중국 전문가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그는 한중미래연구소와 중국 관련 컨설팅 업체를 운영해 왔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박재우씨
"4년 전엔 아버지 반대로 포기… 이번엔 꼭"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1981년 11대 때 처음 당선돼 16대까지 내리 당선된 6선 의원이다. 그것도 부산 동래갑이라는 한 지역구에서다. 그의 아들 재우(40)씨는 지금도 부산에 내려가면 '삼촌'이라 부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20년 가까이 아버지를 돕고 지역구를 관리하던 식구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박재우씨는 "아버지의 그늘을 피해 혼자 크고 싶다"면서 다른 지역에서 출마할 뜻을 굳혔다. 지난번 17대 총선 때엔 서울 마포을 출마설이 돌았지만 이번엔 아직 결정을 못했다.
사실 그는 지난 17대 때도 출마할 뜻이 강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워낙 컸다.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뒤 당시 경호권을 발동한 박관용 국회의장이 한 TV 토론회에 나왔다. 한데 토론회 말미에 "아들이 이번 총선에 나오느냐"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당시 박 의장은 "내가 현직에 있으면서 아들이 출마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반대했습니다. 지난 주말까지 아버지를 설득하다가 허락을 받았습니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YTN에서 4년간 기자로 일했던 그는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HR 컨설팅 회사를 거쳐 현재 컨설팅업체 KPMG 상무로 있었다. 아들이 정치하는 걸 반대하는 아버지 때문에 지난 대선 때에도 이명박 대선후보의 정책특보(비상근)로 일하는 걸 숨겨야 했다. 컨설턴트로서 '공기업 혁신' 등을 주로 맡아왔던 그는 김문수 경기지사를 도와 경기도 6개 지역 경영 진단 등을 맡기도 했다.
"아버지는 '내 경우는 운이 좋아 6선까지 한 것'이라면서 40대 중반, 50대 때 백수가 될 수도 있는 그 가시밭길을 왜 걸으려고 하느냐고 하시죠."
박재우씨는 "아버지의 아들이란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 내 이름 석자로 정치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박근혜, 김현철, 김홍업…
남경필·이종구·정문헌·유승민…
이번 총선에 도전장을 낸 후보 중엔 ‘대통령의 자녀들’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 의원(전남 무안·신안) 모두 출마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도 “이번이 마지막 정치 입문 기회”라며 아버지의 고향인 경남 거제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이밖에도 1960년 제4대 대선 때 유력한 야당 후보로 나섰다가 타계한 조병옥 박사의 아들인 6선의 조순형 의원, 내무부 장관과 충남 지사를 지낸 6선의 정석모 전 의원의 아들인 정진석 의원 등이 대표적인 ‘2세 정치인’이다.
한나라당에 포진해 있는 ‘2세 정치인’은 이번 선거에 모두 출마한다. ‘최연소 3선 의원’인 한나라당의 남경필(43) 의원은 부친인 남평우 의원이 별세한 뒤 1998년 7·21 보궐선거에 나와 금배지를 처음 달았다. 남평우 전 의원은 경인일보 명예회장으로 14대·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종구(58) 의원은 야당 중진이었던 이중재 전 의원의 아들이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MBA 과정을 마친 경제전문가로 17대 때에 정치에 입문했다.
강원도 속초·고성·양양 지역에서 재선을 노리는 한나라당 정문헌(42) 의원은 4선 의원을 지낸 정재철(80) 전 의원의 아들이다. 외할아버지인 고 전진한씨도 1948년 제헌국회의원 출신으로 5선 의원을 지냈다. 유수호 전 의원의 아들인 유승민(50) 의원은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한국개발연구원(KDI),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를 거쳐 17대 때 국회에 들어왔다.
이밖에 2005년 작고한 김진재 전 의원의 아들이자 한승수 국무총리 지명자의 사위인 김세연(36) 동일고무벨트 대표도 부친의 지역구(부산 금정구)에서 예비 후보로 등록했다.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인 장제원(41) 경남정보대학장은 부산 사상구에서 출마할 예정이다.
고 정일형 의원의 손자이자 정대철 대통합민주신당 상임고문의 아들인 호준(37)씨도 과거 부친의 지역구였던 서울 중구에서 출마할 예정이다. 지난 17대 선거에서 낙선한 그는 삼성전자 출신으로 노무현 대통령 집권 초기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