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어교육은 입으로는 안 되는 게 문제지 않습니까. 영어 몰입교육은 우리 아이들이 세계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감과 방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지난 해 영어 몰입교육을 시범 실시했던 고양교육청의 김성희 장학사가 입을 열었다. 2007년 고양시내 공립 초등학교의 일반 학급, 12개 반을 대상으로 영어몰입교육 수업을 받은 학생과 공개 수업에 참관했던 학부모들이 학년 말 '영어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공교육에서 영어 몰입 교육의 가능성'을 확인한 고양교육청은 자신 있게 올해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고양시에서 처음 영어 몰입교육을 시행한 연구 학급은 관내 7개 학교(성저초 4개반, 한뫼초 3개반, 한내초, 일산초, 지도초, 한수초, 호곡초 각 1개반)로, 1학년 3개반, 2학년 3개반, 3학년 1개반, 4학년 2개반, 5학년 2개반, 6학년 1개반이었다. 교과목은 수학 3개반, 즐거운 생활 2개반, 교과통합 2개반, 과학, 미술, 사회, 슬기로운 생활, 음악 1개 반씩이었다.
개학과 함께 교과의 30시간(연간 30차시)을 영어로 수업하는 '부분' 몰입 수업이 시작되었다.
"학기 초에 정말 막막했어요. 사교육을 통해 영어를 잘 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가 컸고, 전반적으로 영어로 수업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라며 윤영아 교사(일산초 6)는 회상한다.
이런 상황은 다른 11개 학급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교사들은 곧 영어가 일상화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우선 교실에서 쓰는 모든 말을 영어로 쓰게 했다. 대부분의 교사가 매일 아침 영어 동화를 읽어주고, 노래와 게임으로 알파벳, 파닉스(발음 중심의 어학 교수법)를 가르쳤다. 아이들은 집에 가서도 영어 노래를 흥얼거렸다. 또, 쉬는 시간마다 교실 한 켠에 놓인 토킹 머신, 퍼즐, 게임으로 영어놀이를 하고, 영어동화책과 CD를 통해 말하기, 듣기, 읽기 공부가 이뤄졌다. 학생들은 방과후도 영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집에서 학급 홈페이지나 경기도 교육청이 제공하는 사이버 가정 학습 사이트를 통해 듣기, 말하기 숙제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1학기를 '영어에 의한, 영어를 위한 시간'으로 보냈다면, 2학기에는 본격적인 공개수업과 평가의 시간이었다. 일부 교사는 한국어로 수업한 내용을 다시 영어로 수업하되 내용을 달리하거나 활동 중심으로 짜서 새로운 공부가 되게 했고, 전혀 새로운 내용을 곧바로 영어로 수업하는 학급도 있었다. 또 영어로 실험 실습이나 악기 연주, 미술감상 등을 하면서 교사, 학생이 과도한 부담을 더는 대신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기도 했다.
그 효과는 차츰 나타났다. 학교 수업에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학원을 그만 두거나,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학교 수업만 충실히 따라가는 학생들이 늘어갔다.
학부모 박상미씨는 "학교 수업만 열심히 해도 아이가 말하기·듣기등의 영어 실력이 부쩍 늘어나는 것을 보고 영어 사교육을 굳이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해 12월 '2007 고양초등영어몰입교육 운영보고회'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교사들은 개인별 보고서에서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많은 과목을 가르치기 때문에 주당 1∼2시간 짜리 수업연구에 몰두하여 준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지도초 김수선 교사)는 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아이들은 새로운 언어를 접하면서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 접근하게 되고 영어에 대한 거리감을 없앴다'(고양한내초 오선웅교사)', '아동들에게 매일 꾸준히 다양한 방법으로 영어를 접하게 하는 양적인 측면이 더욱 중요하다'(성저초 최준희교사)는 결론도 내놓았다.
고양교육청은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올해는 영어몰입 특별 교사를 12명에서 8명 늘어난 20명으로 확대하기로 하고 개학과 동시에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또, 여름방학에는 영어몰입교육을 담당할 교사들을 양성하기 위한 초석으로 100여명의 교사를 한달간 미국 대학으로 어학연수를 보낸다. 그동안 담임 교사가 혼자 준비하던 교수·학습 자료도 올해부터 경인교대 영어 교육과 교수들과 자료 개발 지원단을 꾸려 체계적으로 개발,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고양시는 지난해 보다 2배 이상 늘어난 3억9000만원을 관내 영어 교육을 위해 지원할 예정이다.
박경석 고양교육청장은 "원어민 교사만으론 영어가 안 된다.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영어를 많이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고양교육청은 그동안 영어 몰입 교육, 영어연극, 영어축제 등 장르를 많이 펼쳤다. 이렇게 다양한 영어환경을 펼쳐놓으니 학생들이 영어를 쉽게 느끼고 잘 배울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