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성)'들이 국방부의 정책을 바꿨다. 국방부는 11일 "개정안이 나오기 전 공군에 지원한 병사에게는 현재의 정기 외박제도를 그대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지난 2일 6주마다 2박3일씩 나갔던 공군의 외박제도를 폐지하고 공군에도 육군·해군처럼 성과제 외박을 실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선닷컴 1월11일자 보도

지난 3일 오후, 공군에 복역 중인 남자친구를 둔 '고무신 카페' 회원들 100여명이 인터넷 채팅방에 모여들었다. 공군의 외박제도 폐지 정책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 지 1시간, 이들은 재빨리 한 포털 사이트의 청원란에 '공군 외박 폐지 반대' 성명서를 올리기 시작했다. 신문사 투고와 방송국 제보가 이어졌고, 학생 커뮤니티 제보와 라디오 방송 사연 보내기도 이뤄졌다.

주된 '공격' 대상은 인수위, 국방부, 공군본부. 회원들은 미디어·홍보, 공지사항 전달, 전화 항의와 글 투고 등으로 각자 역할을 나눴다. 이후부터는 끝없는 전화 항의와 인터넷 댓글을 쏟아 부었다. 인수위 게시판에 올린 투고 글 하나에만 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공군 이등병 남자친구를 둔 전민아(20)씨는 "하루에 7시간씩 인터넷 앞에 앉아 댓글만 수백 개를 달았다"고 했다. 결과는 고무신 카페의 승리. 고무신 카페 회원들은 스스로 '유관순의 후예'라 부르며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곰신, 그들은 누구인가

'곰신'은 군대에 있는 군인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성을 일컫는다. 군인을 '군화'라고 빗댄 것에 대한 상대어다. 고무신 카페 모임 운영자 백상아(20)씨는 "6·25 전쟁 당시 고무신을 신은 여자들이 군대 간 남자를 기다린 것에서부터 '고무신'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으로 안다"고 했다. 과거의 곰신들이 나 홀로 오매불망 군대 간 애인을 기다린 것에 비해, 요즘 곰신들은 온라인 상에 모여 함께 활동한다. 2000년부터 개설되기 시작한 곰신 온라인 모임은 현재 네이버, 다음, 싸이월드 3대 포털을 통틀어 회원 수가 30만명에 육박한다. 네이버 고무신 카페의 이달 회원가입자 수가 5000명을 넘어설 정도다.

카페에선 '군화'를 놓고 달콤살벌한 일들이 벌어진다. 곰신에 가입과 동시에 군화에게 보내는 사랑서약서를 통해 "나는 사랑절대주의를 수호하고 사랑통일의 역군이 된다" "나는 서로의 임무를 준수하고 애인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등의 '충성 어린' 다짐을 한다. 남자친구의 계급이 올라가면 남친의 이름과 계급과 입대 날짜가 적힌 '진급장'을 만들고, 본인도 1계급 진급한다. 곰신의 계급은 군화의 계급과 동일시된다. 곰신 카페에는 '훈련병 곰신'부터 '장교 곰신'까지 다양한 여친들이 활동한다. 군화가 군대를 제대하고 '꽃신(남자친구가 제대한 후 곰신에게 주어지는 호칭)'이 될 때까지 계급은 지속된다. 백상아씨는 "곰신들 사이에서도 계급의 높고, 낮음에 따라 높임말과 반말이 나타난다"며 "종종 이런 계급으로 인한 상하 관계 때문에 싸움이 벌어져 카페에서 쫓겨나기도 한다"고 했다.

네이버 고무신 카페는 19~24세 여성이 60%를 차지한다. 하지만 중고생 곰신이나 나이 서른에 가까운 곰신들도 꾸준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정지영(17·고1)양은 "곰신 모임 내에서는 나이가 문제 되지 않는다"며 "얼마나 기다리고, 얼마나 열심히 군대 간 남친에게 잘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여섯 살 연하남을 최근 군대에 보냈다"는 대학원생 김모(28)씨는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곰신들은 남친이 제대한 후에 결혼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곰신, "군화야 언제 오니?"

남자친구가 제대할 때까지 기다리는 곰신 카페 회원들은 자신도 군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곰신들은 각개전투, 제식훈련, 공포탄 쏘기 등을 경험하는 병영체험에 직접 도전하기도 한다. 남친의 어려움을 본인도 겪으면서 기다림의 마음을 더욱 돈독히 하고자 함이다. 작년 2월 100일 휴가를 나온 남친과 혼인신고를 한 김기연(22)씨는 "눈밭에서 각개전투 포복을 하면서 남편의 고충을 알게 됐다"며 "곰신과 군화 모두 서로의 상황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곰신 전용 선물 쇼핑몰도 유행이다. 서로의 사진이 들어간 투명한 '하트 비누편지', 이름이나 계급장이 그려진 '기다림 스탬프', 연인임을 증명하는 '언약 등본' 등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판매의 대부분은 곰신들이 면회를 가는 주말이 아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이뤄진다. 인터넷 쇼핑몰 '군인몰' 대표 곽상원(34)씨는 "2005년 중반 20여 개였던 곰신 관련 쇼핑몰이 현재는 50군데가 넘는다"고 말했다.

곰신들의 최대 위기는 이른바 '일말상초'. 군대 간 지 1년이 지날 즈음인 '일병 말에서 상병 초' 때 애인관계가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다음 카페의 '짬밥 같이 먹기' 운영자 백유진(23)씨는 "많은 군화들이 군대에 적응을 한 이 시점에 '이제 다른 사람 만나볼까' 하는 마음을 먹는다"며 "여자들은 '지금까지 기다린 만큼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절망에 빠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