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문희수, 너무 젊은 나이에 조기은퇴-주치의인 내 책임은 없었던가?!

1989년 2월 어느 날의 일이다. 막 동계훈련이 시작되려는데 문희수가 찾아왔다. 무릎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검사결과는 정상. 나는 갑작스런 체중 증가로 인한 증상일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문희수는 한사코 대학병원에서의 진찰을 원했다.

기실 문희수의 체중 증가는 팀 전략에 의해 취해진 조치였다. 한 시즌이 끝나면 체력 훈련 담당인 조선대학교 체육과 김응식 교수와 나, 그리고 이상국 부장, 김응룡 감독이 모여 결산하는 회의를 겸한 술자리를 하곤 했다.

그 해(1988년) 한국시리즈 MVP가 문희수였는데, 그를 두고 우리들이 내린 결론이 바로 체중 불리기였던 것이다. 그의 체중이 가벼워서 볼도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문희수에게는 체중을 불리라는 감독의 엄명이 떨어진 바 있었다. 문희수의 체중이 불어나면서 그에게는 ‘꽃 돼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때 문희수는 “매일 저녁식사 때면 한 양푼씩 밥을 먹었다”고 했다. 이윽고 체중이 불어난 상태에서 갑작스런 운동이 시작되자 무릎 관절에 무리가 왔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종합병원 가야겠다”는 말을 듣고 난 며칠 후 김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문희수가 수술을 한다는데 어떻게 된 거냐며.

깜짝 놀라 일단 전화를 끊고 기독병원에 확인을 했더니, 이미 관절경 검사가 끝났고 결과는 정상이라는 회신이었다. 그 때만 해도 관절경 검사를 하면 3~4주는 꼬박 운동을 할 수 없었던 터라, 김 감독의 노심초사가 오죽 했겠는가.

어쨌든 내 책임이었다. 선수들이 결국 수술까지 하게 될 때면 최소한 치료를 담당한 의사와 주치의 사이에 충분한 대화가 있어야 한다. 즉 치료의에게 해당 선수환자의 팀 내에서의 위치, 치료시기 등을 충분히 상의한 뒤 감독을 대신해서 의학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술실에까지 들어가게 됐다 하니 결국 감독의 의학적 판단을 도와주지 못한 팀 닥터가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김 감독에게, ‘능력이 없으니 주치의를 그만 두겠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어찌 그 게 임 박사 책임이냐’면서 무슨 일이 있든 나더러 자신이 ‘그만 둘 때까지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사의 얘기가 나오니까 문득 해태에서 일하던 한 트레이너가 떠오른다. 한동안 열심히 일하던 그 트레이너가 그만두면서 모 스포츠 전문지의 한 귀퉁이를 장식했는데 못내 마음에 걸렸다.

기사는 ‘선동렬은 내년에 아주 어려울 거다. 그 동안 내가 열심히 치료해줘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는데 이제는 힘든 싸움이 될 거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물리치료사로서 상당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능력은 좋았을지 모를 일이되, 자신의 처지나나 한계를 분별하며 선수들을 진정 아끼는, 훌륭한 트레이너였는지는 아직도 의문스럽다. 해태의 유명세 때문에 덩달아 능력을 인정받은 탓인지 그 후 다른 팀에서 스카우트됐는데, 그 팀에서도 ‘안착’을 못했다는 후문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이유야 어찌됐든 문희수는 수술시기를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1989시즌에서 죽을 쑤고 말았다. 본인 스스로가 느끼는 괴로움이야 어찌 남들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마는 좋은 자질을 갖춘 투수 한 명이 그로 인해 선수생활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게 한다.

김응룡 감독은 문희수를 “매우 아까운 선수”라고 항상 말한다. 그리고 ‘정과 의리의 사나이’답게 문희수를 끝까지 챙겨 주었다. 현재 문희수는 기아 타이거즈 코치로 열심히 봉사하다가 아마추어 지도자 생활을 한다는 소식이다.

한 팀을 전담하고 있는 주치의와 일반의사의 처지는 천양지차다. 일반의사야 신체 이상과 고통만을 고려, 단순히 의학적인 판단 아래 치료 하지만 주치의는 그런 점에다 그 선수와 팀의 형편도 고려해야 한다. 곧 주치의는 어떤 이유에서건 매년 3월 이전까지 선수들의 건강한 몸을 책임져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부담이 따른다는 얘기다.

농사에도 시기가 있다. 프로야구 선수의 치료 역시 시기가 중요하다. 급한 질환이나 부상은 예외이겠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보통 시즌이 끝나면 가능한 한 빨리 정확한 진찰과 치료를 통해 겨울철 훈련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게 바로 선수의 생명이나 팀 성적에 도움을 주는 일이다.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1988년 한국시리즈 MVP로 우뚝 선 문희수의 모습(제공=한국야구위원회)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제보및 보도자료 osenstar@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