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한두 차례 사업 때문에 인천공항을 통해 일본 나가사키를 오가는 서모(35)씨는 올해 연간 계획을 잡는 과정에서 항공편 일정을 알아보려고 지난 7일 대한항공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4월 12일 나가사키로 출발해 19일 돌아오는 항공편을 조회하자 '선택하신 출발일에는 항공편이 운항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 글이 떴다. 그 다음 달로 출국 날짜를 바꿔도 같은 글이 나왔다. "작년에는 월,목,토 주3회 꼬박꼬박 떴는데…." 의아한 생각에 항공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대한항공 관계자는 뜻밖에 "손님이 없어 올 3월 30일부터 10월 25일까지 이 노선의 운행을 잠정 중단한다"고 했다. 홈페이지나 대한항공 광고, 기내지 등 어디에서도 이 노선운영이 약 7개월간 중지된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한 서씨는 "사전에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정기노선을 일방적으로 폐지하다니 너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이 노선을 이용한 승객은 2만여 명. 서씨 같은 승객들은 앞으로 인근 후쿠오카 공항을 통해 차로 2시간 반 이상 걸려 나가사키로 들어가야 한다.
지난 2004년 12월 나가사키에서 골프장을 인수, 운영 중인 H리조트는 더 난감하다. 올해부터 일본 레저업체와 같이 골프장과 휴양 시설을 동시에 쓸 수 있는 새 회원권 판매에 들어갔다가 대한항공 노선 중단으로 낭패를 보게 될 처지다. H리조트측은 "자기 편의대로 정기선을 없애버리는 것은 소비자를 생각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商) 도의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 일대에 골프장과 리조트를 갖고 있는 또 다른 국내 H사 역시 당황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공항~골프장~호텔을 배로 연결하는 여행상품을 판매해 왔고, 골프장 회원권을 팔 때도 이 부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정이 알려지면서 나가사키현(縣) 공무원들까지 나섰다. 이들은 노선 중단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이번 주 중 서울의 대한항공 본사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대한항공은 제주~후쿠오카 간 운항(2006년 취항)도 지난 6일 전면 중단했다. 인천~오이타 노선(1996년 취항)의 경우 오는 3월 30일부터 운항중단키로 했다가 최근 철회했다. 모두 탑승률이 50% 안팎으로 저조하다는 이유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최근 항공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기 때문에 탑승률이 저조한 노선은 운항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여행사와 예약센터에는 적어도 3개월 전에 노선 중단 사실을 알려 승객 불편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사가 이렇게 노선 변경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것은 항공자유화 협정이 맺어진 나라로 가는 노선은 건설교통부 인가만 받으면 얼마든지 항공사 맘대로 만들었다 없앴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교부 국제항공팀은 "요즘같이 규제 완화를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항공사가 노선을 없애겠다고 해도 막을 수가 없다"며 신청만 하면 이를 허락해준다고 설명했다.
최근 항공사들의 해외노선 중단 현황을 보면 대한항공은 중단노선이 늘어나는 데 비해 아시아나항공은 줄어드는 추세다.〈표 참조〉 이는 항공자유화 확대 등으로 신규 노선을 만드는 것이 쉬워지는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최근 수요를 따져보고 신규 노선을 만들기보다 경쟁사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일단 확보해 놓고 보자는 식의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일단 비행기를 띄워놓고 인천~나가사키처럼 적자 보는 노선은 승객입장을 생각지 않고 우선적으로 정리한다는 것이다. 반면 지난해 부산~호찌민 노선을 중단했던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올해는 다른 노선의 운항 중단 계획이 아직 없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국교통연구원 김민정 책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수요가 없다고 해서 노선을 폐지하는 것은 승객들로부터 불만을 사기 때문에 길게 봐서 손해"라고 지적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항공사가 상품을 팔지 않겠다는 것까지 뭐라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소비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