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털보 왔냐?"

"천재, 넌 요즘 뭐하고 지내냐?"

중년 남자들은 새로운 얼굴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별명이나 이름을 부르며 웃었다. 만난 지 30년이 지난 사람들도 있지만 고교동창들은 서로를 한눈에 알아봤다

지난 연말 서울 동작구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용문고등학교(교장 이광용) 25회 졸업 30주년 동문회가 열렸다. 25회 동문들은 이날을 기념해 조선일보 '스쿨 업그레이드, 학교를 풍요롭게' 캠페인에 동참, 그간 모은 1억3000만원을 학교에 전달했다. 학교는 이 돈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보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또 낡은 건물을 손보고 학교수업에 필요한 기자재도 마련키로 했다.

학교는 축구부원들이 전적으로 부담했던 전국대회 출전비, 합숙비 등에 기부금을 일부 사용할 계획이다. 용문고는 전 국가대표 황선홍(40)씨를 배출했던 축구 명문이지만 현재는 주춤한 상태.

기금 모금을 주도한 조현정(50·비트컴퓨터 대표)씨는 "집안사정이 어려워 고교시절 내내 장학금을 받고 다닌 기억 때문에 나중에 성공하면 어려운 환경에 놓인 후배들을 꼭 도와주고 싶었다"며 "마침 조선일보 스쿨업 캠페인과 취지가 맞아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난 2001년에도 여름 모교에 강연차 방문했다가 고3 후배들의 더위에 지쳐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학교에 에어컨을 기부했었다.

이날 행사에는 동문 150여명과 은사 10명을 비롯, 총 180여명이 모였다. 30년 전 담임 선생님과 졸업생들이 만난 자리는 떠들썩했다. 당시 선생님 별명, 혼났던 일, 몰려다니며 장난쳤던 일을 떠올릴 때마다 이들은 손을 맞잡고 웃었다.

"용문 뺏지 달고 버스에 타니 성신여고 학생이 방긋방긋 웃네♬"

한규원(50·삼보강업 경리이사)씨가 고등학교 시절 동기들과 함께 만든 노래를 불렀다. 동기들은 "맞아, 그 노래!" 하며 다 함께 따라 불렀다. 당시 용문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성신여고는 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연합고사 1세대이자 고교평준화 1세대였던 25회 졸업생들에 대한 선생님들의 기억도 남다르다. 30년 전부터 용문고에서 가르쳐 온 이광용(60) 교장은 "25회 졸업생들은 유난히 학업성적이 좋았다"면서 "이들 덕분에 학교는 날개를 달고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5회 졸업생 20여명이 서울대에 진학했고 육군사관학교 수석합격자도 배출할 정도였다.

이 교장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마련해 준 만큼 후배들도 선배들처럼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학교 발전을 위해 소중히 쓰겠다"고 말했다.

용문고 25회 이수중 동문회장(50·트라텍정보통신 대표)은 "후배들을 도와주자는 아이디어가 나오자 졸업생들이 다들 정성을 표하겠다고 나섰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문들은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동무를 했다. "삼각산 정기서린 서울 중앙에/ 한 송이 피어나니 그 이름 용문~." 교정에 교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