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보다 영어가 더 편하게 느껴지는 나에게 부러운 듯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영어 잘하시니까 좋으시겠어요." 그럴 때마다 반 농담 삼아 이렇게 대답한다. "미국에는 거지도 영어를 잘한답니다."
외국어는 분명히 자산이다. 영어는 더욱 그렇다. 내 경험으로는 한국인이 일본이나 중국에 가서 현지말로 말을 걸면 현지인들이 별스럽지 않게 보지만, 일단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걸면 태도가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화와 기술이 영어권을 중심으로 형성돼서 그런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영어의 파워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유창한 영어보다 영어를 통해 생각을 분명히 전달하는 것이다. 예컨대, 스테레오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훌륭한 음악이 없다면 그건 쓸모가 없다. 영어는 좋은 스테레오에 불과하다. 영어라는 스테레오가 완벽히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알찬 콘텐츠가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유치원부터 매주 '쇼앤텔(Show and tell)'이라는 발표 시간이 있다. 집에서 뭐라도 하나 가져와 친구들 앞에서 그 물건에 대해 간략하게 발표하는 시간이다. 이 물건이 나에게 왜 중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고 차근차근 말하는 것이다. 초등학교까지 이런 식의 교육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히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는 논술의 기본을 다지게 된다.
대학입시철에 접어든 요즘 입시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논술이 가장 큰 이슈다. 논술 과외까지 성행한다. 이런 벼락공부가 과연 미래의 자산이 될 수 있을까. 그것보다 어렸을 때부터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 마련이 더 중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