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것의 반은 땅이고 나머지 반은 하늘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땅을 보며 살아간다. 하늘을 봐야 현실적으로 얻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 같은 천문학도에겐 하늘이 밥줄이다.
언젠가 누가 내게 "당신은 하늘만 보면 먹고살 수 있으니 참 좋겠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논리라면 축구 선수는 공만 차면 먹고살고, 가수는 노래만 부르면 먹고살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뭐든 직업이 되면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하늘만 가만히 바라다보는 일이 지겹기도 하고, 또 우주의 원리를 꿰뚫으려 머리를 싸매다 보면 이 직업을 왜 선택했을까 하는 고뇌도 있다. 그럼에도 공을 골대에 넣는 축구 선수의 기쁨처럼 내게도 가끔은 멋있는 하늘을 보는 기쁨이 있다.
2001년이 바로 그런 한 해였다. 그 해 6월, 나와 동료들은 개기일식을 관측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잠비아로 떠났다. 달이 해를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은 참으로 보기 드문 현상이다. 한 곳에 가만히 앉아 기다리면 300년에 한 번 볼 수도 있고, 우리나라 전체에서도 100년에 한 번꼴로 겨우 볼 수 있다. 그러니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직접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가 관측을 한다.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해는 유난히 빛났다. 드디어 오후 1시 42분을 시작으로 해는 점점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마치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는 것처럼 그렇게 달이 해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 3시 9분, 해는 완전히 달 뒤로 숨었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느끼는 공포감 때문인지 개들은 마구 하늘을 향해 짖어댔고, 내 손은 끊임없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한번씩 올려다본 하늘은 밤처럼 검었고, 해는 달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대신 평소에 볼 수 없는 코로나라는 것이 해 주변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개기일식은 단 3분이었다. 그런데 개기일식이 끝나기 얼마 전, 누군가 "망원경이 고장 났다"며 고함을 질렀다. 오직 자연현상 하나만을 보고자 멀리 오지까지 날아온 이에게 그만큼 커다란 '재난'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역기 선수는 어떤 일이 있어도 3초 동안은 역기를 들고 있어야 기록을 인정받는 것처럼, 개기일식을 관측하는 자는 일식이 진행되는 3분 동안은 누가 뭐래도 자기 일만 해야 그 자료로 논문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일식이 끝난 뒤 상황을 파악해보니 누군가가 실수로 망원경에 연결된 전기선을 밟아 선이 끊어진 것이었다. 컴컴할 때 일어난 일이니 누가 그랬는지 알 수도 없었고, 밟은 자도 분위기가 험악해 자수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 연구원은 고장 나기 직전까지의 관측 자료만으로 논문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잠비아에서 함께한 연구원 모두는 우리가 그곳에 있었단 사실만으로 하늘에 감사했고, 스스로에 만족했다. 카메라와 함께 부지런히 움직이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은 마치 병치레를 하던 어린 시절처럼 많은 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누구도 느껴보지 못했을 자연에 대한 경외감에 몸을 떨었다.
그해 11월, 이번에는 쏟아지는 유성을 촬영하기 위해 망원경을 차에 싣고 소백산 천문대로 올라갔다. 그러나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그 이전 몇 해 동안이나 유성이 비 오듯 쏟아질 거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매번 허탕을 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밤 11시가 가까워오자 동쪽 하늘에서 서서히 유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그 수가 점점 늘어났다. 새벽 1시쯤에는 유성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그 중 큰 것은 거대한 불덩어리를 만들며 동쪽 하늘에서 날아와 서쪽 지평선 근처에서 밝은 빛을 내며 터지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하늘 한가운데에서 터지면서 먼지를 날리기도 했다. 새벽 2시에는 한 시간에 거의 1만개 정도의 유성이 떨어졌다. 우주가 만드는 밤하늘의 불꽃놀이 그 자체였다.
새벽 6시, 날도 밝아와 잽싸게 장비를 차에 싣고 마구 산 아래를 향해 달렸다. 사진을 인화해 언론에 보냄으로써 더 많은 이들이 우리가 본 광경을 함께할 수 있길 바랐다. 당시만 해도 천체 사진을 찍을 만한 디지털 카메라가 없던 시절이었다. 급하게 내려오는데 산중턱에서 지독한 고무 타는 냄새가 나 차를 세웠다. 마음이 급해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마구 밟았더니 브레이크 라이닝이 녹고 있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차를 세워놓고 몇이서 번갈아 오줌을 눠 겨우 라이닝을 식히고 다시 차를 몰았다. 한숨도 못 잤는데도 잠은 오지 않았고,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지겨울 수도 있는 직업인의 하늘이 이토록 멋스러운 선물을 내릴 때, 난 숨이 막힌다. 누구도 느끼지 못할, 내 직업이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