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7대 대통령 잭슨이 1829년 연두교서에서 '공직순환 원칙'을 밝혔다. 관료사회 정실 인사를 개혁하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자기 지지층인 서부 출신을 대거 등용하려는 속셈이었다. 비판이 일자 상원의원 매시가 잭슨을 편들며 한 말이 있다. "전리품은 승자의 것(To the victor belongs the spoils)." 이 엽관제(獵官制) 전통의 최대 피해자가 20대 대통령 가필드였다. 그는 공무원이 되려다 좌절한 젊은이에게 취임 넉 달 만에 암살됐다.

▶공직의 매력은 그렇게 대단하지만 현상학자 랠프 험멜의 눈에 비친 공무원은 "생김새가 인간과 비슷해도 머리와 영혼이 없는 존재"였다. 그는 저서 '관료제의 경험'에서 "공무원은 사람 아닌 사례(case)를 다루고, 정의·자유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통제와 능률만 생각하고, 국민 봉사기구가 아니라 지배기구"라고 했다. "공무원과 정상인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그제 국정홍보처 2급 이하 간부들이 대통령직인수위 업무보고에 나와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 "공화국은 바뀌어도 관료는 영원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기자실 대못질'을 비롯해 지난 5년 홍보처가 앞장서서 벌여 온 갖가지 해괴한 일들이 "대통령 중심제 아래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다 시켜서 한 일이고, 그게 공무원의 숙명 아니겠느냐는 항변 아닌 항변이다.

▶'공무원의 영혼' 얘기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나온다. "관료제는 개인 감정(impersonal)을 갖지 않는다. 관료의 권위가 영혼(spirit) 없는 전문가와 감정(heart) 없는 쾌락주의자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관료제가 되려면 정치적 결정은 정치인이 하고 공무원은 집행만 해야 한다는 뜻이다. 홍보처장을 비롯한 언론탄압의 큰 하수인들은 벌써 몸 피할 궁리를 한다는데, 대신 나온 부하 간부들의 '영혼론(論)'이 씁쓸하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지난 대선 어느 후보는 "공무원이 될 수만 있다면 영혼까지 넘기겠다는 청년실업자가 많다"고 했다. 공무원이 요즘 최고 직업인 것은 신분과 정년 보장 덕분이다. 신분·정년 보장은 원래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이 정실 인사와 엽관제에 흔들리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개인적 원풀이에 공무원을 사병(私兵)처럼 동원한 정권 때문에,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공무원들의 영혼이 매도당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