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省) 중의 성(省)'으로 불리며 일본의 관치(官治) 경제를 이끌던 일본 대장성(大藏省)이 개혁 바람을 맞게 된 것은 1998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정권 때였다.
당시 대장성은 정부가 주도하고 민간은 그 뒤를 쫓아 일제히 진군하는, 일본형 ‘선단(船團)경제’의 심장부 조직이었다. 정책입안·재무·세정·금융 등 경제의 거의 모든 분야를 관할하는 대장성 관료들을 일본에선 ‘관료 중의 관료’라고 불렀다.
그러나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로 일본 경제에도 쇼크가 몰아치면서 관(官) 위주의 경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게다가 1998년 초, 은행에 검사를 나갔던 일부 대장성 관료들이 음란한 음식점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장성은 1순위 개혁 대상으로 꼽히게 됐다.
1998년 6월, 일본 정부는 '관치 경제에서 민간 주도 경제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금융 관련 기능을 대장성에서 떼어내 '금융감독청'을 설립하면서 개혁에 불을 댕겼다. 대장성이 갖는 예산과 금융이라는 두 개의 칼 중에서 금융을 떼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관치의 상징인 ‘대장성’이란 이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장성의 반발은 컸으나, 결국 일본 정부는 2001년 초 대대적인 정부 조직개편을 하면서, 대장성 간판을 ‘재무성’으로 바꿔 달게 했고, 극히 일부 남아 있던 금융 정책기능도 철저히 없애면서 대장성 개혁을 일단락 지었다.
일본 정부는 이와 함께 통상산업성을 개편하며 ‘경제’ 자(字)를 넣어 ‘경제산업성’으로 명명했다. ‘경제’는 민간이 주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정책과 국고를 담당하는 ‘재무성’보다는 민간 산업을 관할하는 ‘산업성’에 ‘경제’란 단어를 붙여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이런 대장성 개혁에 대해서는 ‘불완전한 개혁’이라는 비판 역시 많다. 재무성(옛 대장성)은 여전히 거대조직이며, 일부 기능 분리 정도까지만 이르렀을 뿐 ‘해체’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 개혁의 목적 자체가 그저 ‘민간 주도 경제 건설’은 아니고, 정치적 목적이 컸다는 견해도 있다. 일본 주재 재경관을 지낸 A씨는 “당시 대장성 개혁의 목적은 국정의 주도권을 관료에서 정치인으로 옮기기 위해 정치권이 대장성의 힘을 빼놓는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