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45) 박사는 목소리를 고치는 의사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김 박사의 개인병원 진료실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서 있다. ‘진찰 도구’다. 콘서트를 앞두고 목소리가 갈라진 가수, 고음이 안 나오는 성악가 앞에서 김 박사가 직접 건반을 짚으며 환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점검한다.
“그분들에겐 떨리는 순간이죠. 수입과 명성과 존재의 문제니까요. 자기 목소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남이 알까 봐 불안해하고요. 그분들이 종종 콘서트 티켓을 보내주는데, ‘와서 재미있게 보세요’ 하는 대신 ‘와서 제 목소리 괜찮은지 들어 보세요’ 합니다.”
김 박사는 가톨릭 의대에 다닐 때 미국 영화 '신의 아그네스'를 보고 후두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주인공 아그네스가 노래하는 장면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전율한 것이다. 그는 모교 교수를 거쳐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2년간 교환교수를 지낸 다음 2003년 국내 최초로 '목소리 전문 클리닉'을 냈다.
그가 최근 출간한 책 ‘보이스 오디세이’(북로드)엔 의학과 인문학을 오가며 축적한 흥미로운 지식이 가득하다. 예컨대 판소리 명창의 성대 사진을 보면 득음(得音)이 성대 결절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명창들은 오랜 시간 성대를 세차게 자극해서 성대 점막의 허물이 벗겨졌다 아물었다 반복하게 한다. 문자 그대로 ‘피를 토하는’ 과정을 거쳐 두툼한 ‘근육질’ 성대를 만드는 것이다.
영화 ‘파리넬리’로 잘 알려진 서양 중세의 카스트라토(여자 소리를 내는 남자 가수) 이야기, 사람이 남성 목소리를 들으면 왼쪽 뇌(언어중추), 여성 목소리를 들으면 오른쪽 뇌(감성 중추)의 활동이 왕성해졌다는 미국 예일대 팀의 연구 보고도 흥미롭다.
"가수만 목소리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아니에요"라고 김 박사는 말했다. 2002년 조사 결과 8개 대학병원의 이비인후과 초진 환자 100명 중 16명이 목소리 관련 환자였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쉽게 낫는 경우도 있지만, 난치(難治)인 경우도 많다. 가령 성대 근육에 상처가 난 채 굳으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나 방송 진행자 박경림씨 같은 목소리가 난다. 1년쯤 꾸준히 치료받으면 열 명 중 여덟 명이 '다소' 나아지지만 미성(美聲)이 되지는 않는다.
김 박사는 “인간의 목청도 타고나는 면이 있다”고 했다. 남만 못한 목을 타고난 사람은 커피·차·술·담배·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말을 많이 한 다음 목젖 바로 위 후두 양쪽에 엄지와 검지를 대고 살살 문지르면 좋다. 김 박사는 “그건 그렇고, 날달걀 먹으면 목에 좋다는 건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