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하는 2008년은 대한민국이 건국한 지 60년이 되는 해다. 광복으로부터 꼭 3년 뒤인 1948년 8월 15일의 정부 수립 선포는 우리나라가 다시 독립국가로 섰음은 물론, 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자유민주공화국이 수립됐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유와 평등의 원칙이 정착된 것 역시 그 뿌리는 건국일에 있었다. 지난해 11월 민간 차원에서 건국일을 기념할 것을 제안한 '건국 6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의 고문인 노재봉(盧在鳳) 전 총리와 공동추진위원장인 이인호(李仁浩) KAIST 석좌교수, 박효종(朴孝鍾)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건국 60년을 왜 기념해야 하며, 그것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토론했다. 좌담은 지난달 20일 조선일보사 편집동 6층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건국은 자유민주주의 초석

―꼭 60년 전의 '대한민국 건국'을 바로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인호=건국 60년은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해이기도 한데, 우연의 일치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동양에서 ‘환갑’이라면 개인이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때다. 국가의 경우 60주년이라면 어렵게 출범한 체제가 살아남아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다는 걸 뜻한다. 대한민국이 완전히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돼야 할 시점이다. 대한민국 건국은 2차대전 이후에 독립한 나라가 민주국가로서 정치적·경제적 성장을 모두 이룬 것으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건국 60년’을 기념해야 한다.

▲박효종=건국이란 단순한 정부의 수립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이제 면면히 이어진다는 지속적인 의미가 있다. 돌이켜볼 때 건국은 문명사적으로도 민족사적으로도 새롭게 다가온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조였다. 먼저 문명사적으로 보면, 2차대전이 끝나고 냉전시대가 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체제 사이의 대립이 생겨났다. 과연 어떠한 체제가 의미가 있는 것인지 경합적인 상황이었다. 그래도 건국 지도자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기로 결단을 했다. 60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지금 우리 체제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측면에서 사회주의를 압도했다는 것은 확실해졌고, 이제 북한을 껴안고 통일을 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

민족사적으로 볼 때도 건국을 통해 새로운 헌법을 마련했다는 것은 우리도 영국의 권리장전이나 미국의 독립선언서 같은 문서를 갖게 됐다는 것을 뜻한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시장경제, 인권 같은 아주 중요한 원칙에 대한 초석을 놓은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얘기는 많이 있었지만 그 원초적인 화두가 됐던 건국의 의미는 좀처럼 얘기되지 않았고, 지금 반드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노재봉=건국이란 우선 국가사적인 의미에서 보면 유교 정치권에서 완전히 탈피하고 비로소 우리 민족이 세계 정치의 일원으로서 참가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이데올로기로 포장됐던 볼셰비키적인 제국주의에 맞서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근대 민족국가를 이뤘다는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당시에 민족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은 볼셰비즘의 입장에서 보면 반동이었다. 체제사적인 의미에서 보면 왕조 체제가 종식되고 처음으로 공화정이 수립됐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헌법에 투영됐다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현실이 펼쳐진 것이다.

▲이인호=사실 우리가 광복을 맞고 건국할 때만 해도 공산주의, 스탈린 독재체제라는 것이 소련 제국주의의 악랄한 모습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우리 정치지도자 중 상당수가 ‘마르크스주의면 어떠냐, 민족통일만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건국했다. 지금 보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60년 전을 냉정하게 돌이켜볼 때, 지도자들 중에서도 공산주의의 실상을 냉정하게 꿰뚫어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이승만 박사를 비롯해서 많지 않은 우익 인사들뿐이었다.

◆나라 세웠기에 통일도 있는 것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에 비해 1948년 8월 15일 ‘건국일’은 좀처럼 기억되지 않았다. 젊은 세대들은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배우지 않거나 일부에선 부정적으로 교육받기까지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인호=60년이란 세월 동안 세대교체가 이뤄졌고, 분단과 동족상잔 같은 불행한 경험과 후유증을 심하게 겪었다. 반공 교육이 국가의 존재 이유처럼 여겨졌던 때도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공산주의의 실상을 모르게 하는 역작용을 낳았다. 6·25전쟁 이후 공산주의가 왜 나쁜지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전쟁은 양면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에서 피해 입은 사람들도 존재했기 때문에 냉정한 평가가 어려웠다. 그래서 오히려 건국의 의의까지도 희석되는 일이 생겨났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심지어 생기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마음대로 표출했다. 그런 사람들이 교과서 편찬까지도 주도했다. 통일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지만 그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우리의 나라가 있기에 통일을 생각할 수 있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북한 동포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으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노재봉=근래 10~15년에 걸쳐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여러 방면으로 도전을 받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다른 나라였다면 당연히 가장 큰 축제일이 됐어야 하는데도, 우리는 그렇지 못했던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다.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과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격렬한 투쟁 과정에서 생겨났다. 현실적으로 근대국가 수립 과정에서 이상적인 합의에 의한 건국은 드물다. 설립자(founder)의 역할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런 현실을 잊어버리고 이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독재’ 같은 것만 부각하기 때문에 건국의 의미가 희석된다. 60년이라는 시간은 근대 정치를 체질화하기엔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잘못한 것도 있겠지만, 큰 맥락에서 볼 때 대한민국 설립자의 역할은 매우 컸다. 아무것도 없는 헐벗은 상황에서 자유주의 이념을 기초로 새로운 민족국가와 민주공화제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동상이나 심벌조차 하나 없을 정도로 처절한 상황이 돼 버리고 말았다.

▲박효종=현재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해방 공간의 와중에서 통일국가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 1946년 6월 이승만의 ‘정읍 발언’ 때문이었다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고, 이것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으로까지 연결된다. 그러나 정읍 발언 당시는 이미 김일성 일파에 의한 북한 정부 수립이 기정 사실화된 상황이었고, 여기서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 정부의 출범은 정당성을 지닌다.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가 됐다면 남한은 당연히 자유민주주의 쪽의 몫인데, 좌파 세력을 포괄하지 않았다고 해서 정당성의 결격사유로 보는 것은 무리다. 총선거를 하자는 유엔의 제안을 북한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받아들였다.

◆지금은 1948년처럼 어려운 상황

―60년 전 건국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은 2008년 우리들의 삶과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노재봉=건국 이후 근대국가의 내실을 다진 것은 박정희 시대였다. 20년도 채 되지 못한 시기에 농경사회를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근대화를 이룬 것은 세계에 유례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자유주의를 일부 유보한 국가 주도의 권위주의식 자유민주주의 체제였던 데 비해, 전체주의 북한은 시간만 걸렸을 뿐 성과가 없었다. 좌파 정권 10년이 끝나가는 지금 한국 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시점이다. 국가 채무와 공무원은 늘어났고 안보의식과 시민사회의 자율성은 약화됐다. 건국의 의미를 되새기고 새롭게 건국을 한다는 각오를 통해 내적 발전의 모티브를 만들지 않으면 위험을 돌파하기 힘들다.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고 민족주의 시대를 넘어서서 세계화에까지 대처해야 하는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이인호=대한민국이 그때 세워졌고, 그걸 수호하고 발전에 성공했기 때문에 건국을 축하하자는 것이다. 당시 헌법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자유주의의 의미를 진보적 방향으로 이해했고, 사회민주주의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뒀었다. 이승만 박사도 사회민주주의에 훌륭한 대안이 있다는 것을 의식했음에도 철저한 반공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혁명적 공산주의를 막아야 복지정책을 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유재산권 원칙을 인정하는 한계 내에서 복지체제를 구축하려는 이상은 지금도 유효하다. 또한 국제 공조와 협력이 없으면 ‘우리 민족끼리’ 잘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박효종=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 이제 우리가 중요한 아젠다로 삼아야 할 것은 선진화인데, 그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많은 역경들이 앞에 놓여 있다. 2만달러냐 4만달러냐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로서 한 단계 도약하는 질적인 문제다. 일본이 중흥의 칼을 갈고 있고 중국이 욱일승천 성장세인 상황에서 우리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우려가 있다. 60년 전 건국 당시의 상황도 지금처럼 어려웠다. 건국 정신에 깃들여진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이상과 약자에 대한 배려가 모두 중요하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 건국하고 주변 국가와의 관계에서 위상을 정리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용기와 지혜를 되살려 국민이 한마음이 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점에서 필요하다.

◆지금은 1948년처럼 어려운 상황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건국 60년’을 기념해야 할까?

▲이인호=대한민국의 정통성이 결여됐다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건국 60년 기념사업’을 준비하게 된 것은, 건국의 의미가 너무나 잊혀지고 있고, 정치인들의 관심도 다른 데 가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빨리 기념사업에 대한 예산이 책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만 맡길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국민 스스로 건국을 기념하는 것과 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민간단체와 지자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사업들을 벌여 나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학술대회에서 전시회, 유소년 축구 경기에 이르는 다양한 행사들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실상과 우리가 이룩한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역사적으로 조명하고, 새 세대의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박효종=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가진 축제로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실 국가가 나설 일이지만, 민간에서 해나갈 부분이라도 ‘정규전’과 ‘게릴라전’을 가리지 않고 계속 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노재봉=그렇게 건국 60년을 기념하는 국가적인 의식(儀式·ritual)은 생각보다 대단히 중요하다. 국민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정부도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