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의 근본적인 원인은 1945년 38선 봉쇄로부터 1946년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의 수립으로 이어지는 소련의 조치들에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양동안(梁東安)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정치학)는 31일 발간되는 학술지 '정신문화연구' 겨울호에 실린 논문 '한반도 분단의 정확한 원인 규명'을 통해 이와 같이 밝혔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분단의 원인을 해석할 때 민족 내부의 분열(내인론)과 미국·소련 등 외세(외인론)에 모두 있다는 '복합론'이 대세였으며, 일각에서는 1948년 남·북한 정부의 수립을 분단의 원인으로 인식하는 시각도 존재했다.

양 교수는 '분단(division)'의 개념부터 분명히 정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①영토가 물리적으로 분할된 위에 ②각각 새로운 주권적 통치체제가 들어서는 것이다. 그는 분단의 원인 판정에 법의학의 개념을 원용했다. "인체가 사망에 이르도록 치명적으로 작용한 원인과, 치명적이지 않은 장애가 복수로 존재할 때 사망원인은 전자로 봐야 하며, 그 중 먼저 발생한 장애가 우선적 장애"라는 것이다.

그것을 '한반도 분단'에 적용했을 때 그 정확한 원인은 1945년 8월부터 12월까지 취해진 소련군의 38선 봉쇄 조치에서 시작된다. 소련은 진주 직후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38선 이북에 연접한 북한의 교통 요지를 모두 점령했고, 이어 남북의 인적 왕래와 물적 교류를 차단했다. 당시 소련이 분할 점령했던 다른 지역인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선 이런 봉쇄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소련은 북한 각 지역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간부를 양성하는 등 남한과는 대단히 이질적인 통치를 실시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들어선 북한 지역만의 '새로운 주권적 통치체제'가 1946년 2월 설립한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였다. 이 위원회는 스스로를 '정부'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정부였다. 법령을 결정·집행하는 중앙행정주권기관의 학술적 명칭은 '정부'밖에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북한만의 단독 정권'이 먼저 수립됨으로써 분단의 두 가지 핵심사항이 모두 실현됐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따라서 남·북한 정부 수립을 분단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은 ‘사망의 증상을 사망의 원인으로 주장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좌우합작운동·남북협상의 실패 같은 내인이 외인과 함께 분단의 원인이 됐다는 견해(강만길) ▲분단이 미국의 책임이라는 견해(강정구) ▲미·소의 공동 책임이라는 견해(신용하) 등은 모두 실제로는 사망 판정에서 필연적이지 않은 유사원인(類似原因)을 원인으로 오판했거나, 역사적 상황을 잘못 해석한 결과라고 양 교수는 지적했다.